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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IB 회원국 우려 반영… 출자비중 줄어들겠지만 주요의제에 거부권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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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협력·인재육성 등 질 높은 지원계획 강조… AIIB 가입 유보 검토도
8조달러(약 8,700조원) 규모에 달하는 아시아 지역 인프라 개발자금 수요를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이 본격적인 주도권 다툼에 돌입했다.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초기 설립자본금을 당초 계획했던 500억달러에서 1,000억달러로 대폭 늘리기로 한 가운데 일본은 2020년까지 아시아 지역 인프라에 약 1,1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혀 AIIB 견제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오는 6월 말로 예정했던 AIIB 가입 여부 결정도 당분간 유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또 일본의 정부계 개발협력기구와 아시아개발은행(ADB) 간 연계를 통해 ADB의 지원능력 확대와 ADB에 대한 별도의 추가 출자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AIIB와 ADB 간 자존심과 실리를 건 몸집싸움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 총리는 2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주최하는 국제교류회의 만찬회에 참석해 "질 높은 인프라를 아시아에 확산시키기 위해 앞으로 5년 동안 약 1,1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고 신문이 22일자로 보도했다. 이는 지난 5년간 일본의 역내 인프라 투자액에 비해 30%가량 많은 수준이다. 아베 총리는 "해마다 아시아에서 100조엔 규모의 왕성한 인프라 수요가 발생한다"며 "일본이 금융 면에서 큰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ADB는 2010~2020년 사이 아시아 지역 내 인프라 수요가 8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특히 AIIB와의 차별화를 의식한 듯 인프라의 '질'을 거듭 강조하며 기술협력이나 인재육성에 초점을 두는 '일본식' 인프라 지원계획을 내놓았다. 향후 5년간 에너지 분야에서 5,000명, 의료·보험 분야에서 8,000명의 인재개발을 돕고 각국과 기술협력을 강화하는 등 전통 기술 강국으로서의 소프트파워를 십분 활용한다는 것이다.
자금력 면에서도 일본이 주도하는 ADB가 일본국제협력기구(JICA)와 협력해 인프라 융자나 출자에 나서는 새로운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면 ADB의 출자 능력은 종전의 3배로 늘어나게 된다고 아베 총리는 강조했다. 일본은 1,100억달러 가운데 약 절반에 해당하는 500억달러 이상은 ADB에 대한 투융자로 300억달러는 JICA를 통한 해외 투융자와 엔 차관에 투입할 계획이다. 민간기업과의 협조융자로 대형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국제협력은행(JBIC)에 대한 투융자 등도 200억엔 규모로 대폭 늘린다. 정부 자금을 따라 민간까지 합세해 '자금 풀'이 커지면 역내 인프라 시장에 대한 장악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아베 총리의 구상이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이 같은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 번도 AIIB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 한창 AIIB 수석교섭관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 ADB의 주도국인 일본의 이 같은 인프라 지원확충계획이 AIIB를 견제하기 위한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ADB 등을 중추로 삼는 아베 총리의 지원계획은 AIIB를 강하게 의식한 결과라며 1,100억달러라는 지원금액 자체가 당초 AIIB가 목표 자본금으로 제시한 1,000억달러를 웃도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는 특히 이날 연설에서 "질 높은 인프라 투자"를 거듭 강조하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시장을 아시아에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밝히는 등 간접적으로 AIIB를 깎아 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에도 일본의 한 방송에서 AIIB 관련 질문에 "나쁜 고리대로 돈을 빌린 기업은 결국 미래를 잃게 된다"며 노골적인 견제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일본의 이 같은 견제에도 불구하고 AIIB는 ADB의 명실상부한 대항마로 빠르게 세력을 정비하고 있다. 이날 아사히신문은 AIIB 수석교섭관회의에 참석한 회원국들이 당초 500억달러로 예상됐던 초기 설립자본금을 두 배인 1,000억달러로 증액하기로 만장일치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500억달러의 초기 자본금을 출범 2~3년 이내에 1,000억달러로 늘릴 계획이었지만 참가국이 57개로 급증하자 안정적 경영을 위해 초기 자본금을 늘리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도국으로서 중국의 입지도 확고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는 회원국들의 우려를 반영해 중국의 출자 비중은 당초 목표했던 50%에서 30% 미만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지만 지분변경 등 주요 의제에 대해서는 '의결권의 75%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을 조항을 둠으로써 25% 이상 지분을 갖는 중국에 사실상 '거부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이 경우 다른 참가국들이 모두 찬성해도 중국이 반대하면 가결이 불가능해지는 구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