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총선이나 대선 등 선거가 있는 해가 되면 부담이 크다. 물가를 안정시켜야 하는데 대형 선거가 있는 해에는 으레 통화량이 급증하면서 물가를 끌어올렸다. 더구나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있는 해여서 통화량 증가폭이 더 커질 수 있는데다 경제위축을 막기 위해 정부가 재정을 조기에 집행하는 확장정책까지 예고하고 나선 터라 물가상승 압박이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올해 한국은행이 통화량을 조절하기 위해 정치권이나 정부 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적기에 통화신용정책을 구사할지 주목된다.
6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 1987년 이후 선거가 있던 해에 시중 통화량(M2ㆍ연말잔액) 증가율은 선거가 없던 해보다 1.8%포인트 높았다. ★본지 3일자 1ㆍ3면 참조
특히 올해처럼 대선과 총선이 한꺼번에 치러진 1992년의 M2 증가율은 21.5%에 달했다. 대형선거 때면 경기를 살리기 위한 정책집행이 뒤따르곤 하는데 그게 통화량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다. 또 막대한 선거자금이 시중에 풀리는 것도 통화량의 증가로 이어진다. 오현석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대형선거는 대표적 현금결제 이벤트로 실물경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통화량이 늘어나다 보니 물가도 예년보다 크게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66년 이후 대선이 있을 때 평균 11.5%를 기록해 평년의 8%보다 3.5%포인트 높았다. 더구나 대선과 총선이 함께 있던 해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3.4%를 기록했다. 이는 평년 물가상승률보다 5.4%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홍정혜 신영증권 연구원은 "총선과 대선이 모두 있으니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른 시기보다 더욱 높을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물가안정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물가상승을 억제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선거 때문에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통화량 조절의 대표적인 수단인 기준금리의 경우 선거와 맞물리는 뚜렷한 방향성은 없었다. 채무가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선심성으로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통상적인 전망과는 다른 셈이다. 중앙은행이 그나마 물가조절 등을 위해 중심을 잡은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2000년 이후 대선이나 총선이 열렸던 5개년 중 세 차례는 기준금리가 올라갔고 2004년과 2008년 두 차례는 떨어졌다. 특히 선거가 있는 해에 한은이 '선심성'으로 정책금리를 내린 적은 조사기간인 2000년 이후 11년간 한 차례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