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한층 강화된 서방의 제재에 맞서 유럽 항공기의 영공진입 제한 등 강경 대응 카드를 꺼내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배치된 러시아군도 증원된 것으로 알려져 러시아와 서방 간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러시아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수단의 하나로서 경제를 압박하는 것은 규범과 원칙에 어긋나는 일로 용납할 수 없다"며 내각에 서방 제재에 대응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현 상황에서 자국 생산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며 "내각이 서방의 생산품 부족으로 소비자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하는 선에서 신중히 대응책을 낼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가장 유력한 러시아의 보복조치는 서방 항공기의 시베리아 항로 운항횟수 제한 혹은 러시아 영공진입 전면금지다. 러시아 국영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의 자회사인 저비용항공사 도브롤료트가 서방 제재의 여파로 운항을 전면 중단한 데 따른 보복조치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이날 교통부 장관, 아에로플로트 부사장과 만난 자리에서 "가능한 보복조치를 모두 논의선상에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 항공사들이 시베리아 항로를 이용하지 못할 경우 4,000㎞를 우회해야 해 1회 운항에 최대 3만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러시아 경제 일간지 베도모스티는 "러시아 영공을 우회하게 되면 루프트한자ㆍ에어프랑스 등 유럽 항공사들의 1·4분기 손실이 총 10억 유로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구 식품 등에 대한 보복은 이미 시작됐다. 러시아는 최근 미국산 닭고기에 대해 살모넬라균 오염을 이유로 수입을 금지한다고 발표했으며 폴란드산 과일 및 채소도 수입절차와 검역상 문제를 이유로 수입을 중단했다. 또 캐나다산 돼지고기도 허술한 수입절차를 문제 삼아 수입금지 조치를 내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에 진출한 패스트푸드 체인도 타깃으로 떠올랐다. 러시아 동식물검역국은 맥도날드가 쓰는 치즈에 항생제가 쓰인 의혹이 있다며 조사에 착수했다. 이 같은 조치는 버거킹·KFC 등으로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맥도날드 납품 업체 중에는 독일과 체코 업체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지난해 러시아의 미국산 농산물 및 식품 수입량은 13억달러로 미국의 전체 대러 수출액의 11% 수준"이라며 "적은 비용으로도 서방의 제재에 대처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이와 함께 이란과 200억달러 규모의 에너지협력 계약 체결 등으로 서방의 제재에 따른 타격을 완화하려는 조치도 취하고 있다. 러시아 에너지부는 성명을 내 "앞으로 5년간 이란과 석유 및 가스 산업 협력, 발전소 건설 등 200억달러 규모의 경제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나란히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양국 간 협력이 최종 결정되면 적지 않은 '윈윈' 효과가 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배치된 러시아군도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고위관리는 지난주 이 지역에 러시아군 병력이 8,000명 추가 배치되며 총 2만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불과 50㎞ 떨어진 곳에 배치돼 있으며 여기에는 특수부대 '스페르나츠' 병력도 포함돼 있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800㎞ 떨어진 곳에서 군사연습을 하는 장면도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월의 4만명보다는 훨씬 적지만 단기간에 배치병력 수가 급증한 점은 최근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분리주의 민병대 진압이 강력해지는 것과 맞물려 우크라이나 영토의 직접 침범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