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간 국내업체가 해외로펌에 지급한 법률자문비용이 5조 1,000억여원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올 하반기 이후 본격적인 법률 시장 개방을 앞두고 법률 수지 적자 악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국내 통계상 잡히지 않는 국내업체들의 해외현지 법인을 통한 직접적인 법률자문 거래를 감안할 경우 실제 적자액이 매년 1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적자폭 갈수록 커진다= 7일 한국은행 서비스무역세분류 통계에 따르면 법률자문시장의 수임료 적자폭이 2009년 최초로 5,0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5,640억여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해외지출액은 1조 2,000억원에 이르렀지만 수입은 이에 한참 미치고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국제적인 금융위기사태와 국내기업들의 적극적인 해외진출이 그 이유라 지적했다. 법무법인 세종의 김범수 변호사는 "금융위기 이후 외국기업의 국내 진출 투자가 축소되면서 자문수요도 줄어들었다"며 "국내기업의 경우 이를 기회로 해외진출에 나섰지만 이 경우 여러 사정상 현지 로펌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의 국제적 활동이 늘어나면서 해외에서 피소 당하는 일도 많아지면서 국제 중재 및 소송비용도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더해 국내 로펌들에 대한 불신풍조와 외국계의 편법자문 의혹도 적자를 부추기고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상당수 외국계 로펌들이 수년 전부터 국내에 직원을 파견해 외형상 국내변호사를 자문하는 형식으로 편법영업활동을 펼쳐 적자폭을 키우고 있다"며 "또 일부 영미계 로펌은 국내 대기업과 자문계약을 맺고는 보조 로펌으로 국내 로펌을 선정해 이른바 '법률자문 하청' 행위까지 서슴지 않아 국부유출의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 대형 로펌들의 경우 10여간의 해외활동 경험으로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국내 기업들이 많게는 3배나 더 되는 자문액에도 이유 없는 불신으로 해외로펌을 선택하는 점도 크다"고 덧붙였다. ◇영ㆍ미계 로펌 공습 시작= 법률시장개방을 앞둔 시점에서 국내 로펌들은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뾰족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로펌별로 많게 50여명에서 20여명의 해외자문팀을 꾸리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링클레이터스•클리포드챈스•베이커앤매킨지 등 이른 바 영미계 '메가로펌'의 국내시장 공습에 따라 '토종 로펌'들은 생존 게임 양상으로까지 몰리고 있다. 실제로 영국계 대형로펌들의 경우 홍콩지사를 중심으로 유능한 한국변호사 영입을 타진하고 있으며, 미국계의 경우 중소형 로펌을 중심으로 국내로펌과의 동업 등을 추진하면서 국내시장을 노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법조계에서는 로펌 경쟁력의 핵심인 능력있는 인재 유출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와 함께 외국계 로펌의 브랜치가 국내에서 발생하는 법률수요를 독식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 국내 대형로펌 외국변호사는 "이들 외국로펌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국내시장 보다는 한국 내 브랜치를 통해 삼성•LG•현대•포스코 등 국내의 글로벌기업들의 국내 및 해외소송 중재 등 연계성 있는 다양한 수익창출을 기대하고 있다"며 "심각할 경우 국내기업의 국내외 법률자문 수요 전체를 빼앗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의 국내 법률시장 인식 변화 필요= 법조계에서는 정부의 법률 시장에서 대한 인식변화와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국내기업이 해외로펌의 자문을 받을 경우 기업의 영업 비밀에 관한 자료가 모두 해외 로펌 손에 들어가 유출 위험이 따른다는 점에서 정부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법무법인 율촌의 윤세리 변호사는 "영국은 법률산업을 국가적인 전략사업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조선산업과 반도체 등 한국이 1위를 달리는 분야도 처음부터 1등은 아니었듯 시장개방에 따른 국가차원의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기업 해외진출과 같은 중요사업에서 한국 로펌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외국계로펌에 맡길 경우 30~50% 더 비싼 비용은 물론 영업비밀 유출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