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의 본질적 문제는 (통화 일원화 말고는) 정치·경제적 통합이 빈약하다는 점입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어떤 형태의 양적완화(QE) 정책을 내놓든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독일 일간지 빌트는 이번주를 일컬어 '유로화를 위한 운명의 한 주'라 표현했다. 지난주 스위스중앙은행(SNB)이 3년 반 묵은 사실상의 고정환율제(최저환율제)를 전격 폐기해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을 준 데 이어 22일(현지시간) ECB의 통화정책회의, 이른바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Grexit)의 운명을 가를 25일 그리스 총선 등 세계 경제 전체를 뒤흔들 유럽발(發) 대형 이슈가 즐비하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에 있는 국가전략 컨설팅 업체 '스피로소버린스트래티지'의 창업자인 니컬러스 스피로 대표는 21일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유럽 내 수요가 (지금처럼) 장기간 부진한 상태에서 QE 정책이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의미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22일 열리는 ECB 회의에서 QE 정책이 도입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스피로 대표는 다른 전문가들의 예상과 마찬가지로 "기정사실로 된 것"이라며 "오히려 관심은 정책의 형태와 방식, 즉 QE의 규모나 각국 중앙은행들이 어느 정도의 신용 리스크를 부담하느냐 등에 쏠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ECB가 직접 회원국 채권을 사들이는 기존의 논의방식 대신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현재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회원국 중앙은행들이 각각 자국의 채권을 사들이는 절충안이 이번 회의 때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QE 규모는 5,000억~7,000억유로(약 626조6,400억~877조2,960억원) 사이, 기간은 향후 12~18개월 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스피로 대표는 "ECB가 QE를 이렇게 해도 문제, 저렇게 해도 문제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대규모의 QE를 단행하면 지금껏 QE 반대를 주장해온 ECB 최대 출자국 독일의 심기를 건드리는 꼴이고 제한적인 수준의 QE를 내놓을 경우 시장의 화를 돋우게 되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는 어떤 QE 프로그램이 나오든 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CB가 바라는 그림은 'QE 도입→금리하락에 따른 이자 부담 경감→가계소비 및 기업활동 회복→기대 인플레이션 상승' 등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지만 유럽 경제는 그 흐름을 끊는 구멍인 '수요부진'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스피로 대표는 "현재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채권 수익률은 대부분 사상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어 더 이상 내려갈 여지도 많지 않다"며 "QE 프로그램이 시장에 믿음을 충분히 주지 못할 경우 금융시장은 오히려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유럽의 본질적 문제는 정치·경제 통합 수준이 약해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재정·구조 개혁의 수행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이 대표적 예"라고 주장했다.
이번주 말의 그리스 총선과 관련해 스피로 대표는 유럽연합(EU), 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이른바 '트로이카' 채권단과의 채무조정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는 제1야당이자 급진좌파 정당 '시리자'의 승리를 점치며 "(그렇게 되면) 유로존 국가 안에서 최초로 반체제·반긴축을 부르짖는 정당이 권력을 잡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시리자가 승리하면 차기 총리로 오를 게 확실한 알렉시스 치프라스 당수의 향후 행보와 관련해서는 "시장의 기대만큼 실리적이거나 유연하게 나올 것 같지 않다"며 "채권단과 재협상에 들어가면 본인의 정치 입지를 강화하는 차원에서도 매우 강한 톤의 흥정에 나설 것"이라며 전망했다. 다만 시장이 예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협상 실패로 인한 그렉시트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가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러시아 경제상황과 관련해 스피로 대표는 "러시아는 서구권의 강한 경제제재와 유가급락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는 상태"라며 "조만간 현재의 '투자적격 등급'을 잃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러시아에 있어 우크라이나 사태는 "경제가 아닌 지정학적 이슈"라며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왜 이 위기를 해결하기 훨씬 어려운 지경으로 몰고 가고 있고 왜 경제제재가 서구권이 의도한 효과를 보여주지 못하는가를 설명해준다"고 말했다.
● 스피로 대표는
캐나다 토론토대를 졸업한 스피로 대표는 영국 노팅엄대에서 석사, 켄트대에서 정치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의 유명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기자를 거쳐 미국 컨설팅 회사 MGA에서 중부유럽 거시정치컨설턴트,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업체 DTZ에서는 중·동부 유럽 투자부문 대표를 지냈다. 지난 2010년 설립된 스피로소버린스트래티지는 글로벌 경제 분석의 중요 변수로 떠오른 소버린 리스크(국가위험)를 전문적으로 평가·예측해 전세계 금융기관 및 국부펀드, 민간 기업 등에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