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겨울은 이상 '난동(暖冬)'을 겪고 있다. 12월 중순까지 봄 같은 포근함과 여름 같은 장마가 이어졌다. 겨울 물난리를 만난 노인들은 '변고'라고 수군댔다. 물 많은 이 해의 최고 인기 가요는 동명의 영화 주제가인 '낙화유수'로, 노래를 부른 이정숙은 홍난파의 제자였다. 물이 불어난 청계천 둑을 따라 자전거가 달리는데 처음에는 '축지법을 쓰는 괴물'이라며 사람들을 놀래키던 자전거 대수가 경성(서울)에만 벌써 1만대를 넘었으며 전국적으로는 13만대를 넘겼다는 소식이 신문에 크게 실렸다.
신간 '경성 모던타임스'는 이렇게 생생하게 그리고 세세하게 1920년대의 서울을 살려낸 다큐멘터리다. 저자는 역사를 전공하고 신문기자로 재직한 뒤 신문의 역사를 연구했다. 주인공으로 '한림'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운 저자는 당대의 신문·잡지·공문서·지도 등 공적 기록과 일기·회고 같은 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사건과 인물의 행적을 찾아냈다. 기록들의 빈틈은 저자의 글솜씨가 메운 결과로, 책은 소설 같은 역사서로 태어났다.
3·1운동 직후인 1920년대는 일제의 '무단통치'가 '문화정치'로 변화하던 시기다. 영화·문화·음악·무용 등의 문화와 커피·자전거·전차 등의 문물이 조선을 파고들던 시기이기도 하다. 안내자는 가상인물 '한림'이지만 등장인물 대부분은 이 시대를 살았던 실존인물로, 당시의 사건과 변화상을 보여주며 1920년대 경성에서의 삶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짚어준다.
책을 즐기는 독자라면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이 살았던 근대 서울의 풍경을 떠올릴 만하다.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