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스케일 극대화시킨 재난 블록버스터… 빈약한 '종말론'

[리뷰] 영화 '노잉'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누가 인류를 구원할 것인가. 1959년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타임캡슐에 넣을 그림을 그리는 행사가 한창이다. 이 때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넋이 반쯤 나간 한 소녀가 종이 한 장 가득 빽빽한 숫자를 써 나간다. 소녀는 시간이 다 됐다며 종이를 내라는 교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숫자를 적으며 그들이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을 중지 시켜달라고 한다. 50년 후 타임캡슐의 개봉 현장. 일련의 초등학생들이 50년 전 선배들이 남긴 종이를 한 장씩 물려받는데 미국 MIT대의 천체물리학 교수 존 코슬러(니콜라스 케이지)의 아들 켈럽에게 소녀가 적어내린 숫자로 가득한 종이가 주어진다. 종이에 적힌 숫자들을 유심히 살피던 존은 911012996이라는 숫자를 발견하고 2996명이 사망한 2001년 9월 11일의 사건이라는 걸 깨닫는다. 종이에 적힌 숫자들이 지난 50년간 발생한 대형 재난 사고의 날짜와 사망자 수를 나타낸다는 걸 깨닫고 경악하는 존. 종이에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세 건의 재난이 예고돼 있고 존은 사건들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예고된 사건들 앞에서 존은 인간이란 극히 미약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이며 예정된 재앙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데…. 썩 잘 빠진 재난 블록버스터임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 '노잉'은 극 전반 기존 재난 영화의 스펙터클한 강도보다 몇 배는 강한 시각적 효과를 앞세워 관객의 심장박동수를 높인다. 편집 장면 없이 원신 원테이크로 촬영된 비행기 추락신은 마치 추락하는 비행기가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충격을 주며, 마주 오던 지하철이 철로를 이탈해 상대편 열차를 향해 추돌하는 장면은 사고 현장 속 공포감을 체험하게 한다. 특히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은 사고 현장에서 몸에 불이 붙은 채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피해자와 지하철의 차량에 몸이 깔려 팔, 다리가 잘려 나간 희생자들을 롱테이크로 보여 주면서 관객에게 현장의 공포를 느껴보라고 강권한다. 학생들에게 천체 물리학을 강의하면서 "세상의 사건들은 그냥 일어나는 것 같다"며 무작위론을 강조하던 존 코슬러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세상의 종말은 이미 결정돼 있다는 결정론 쪽으로 마음을 굳혀 간다. 공포물과 재난 영화, 묵시록, SF 등 갖은 장르를 오가며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단 한 가지 결론이었던 셈. '노잉'을 관람하는 재미는 마치 놀이공원에 가서 '귀신의 집'에 들러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것처럼 공포와 짜릿함을 교차한다. 하지만 인류를 구원할 마지막 희망으로 제시되는 존재가 드러나는 결말부에서는 김빠진 사이다를 먹는 맛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의 면모를 자랑하며 화려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던 감독의 밑천이 모자랐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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