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은 지난달 19일 인도를 넉 달 앞둔 7,034억원짜리 드릴십(심해용 원유·가스 시추선) 계약을 해지했다. 발주사가 중도금을 못 낼 정도로 자금 사정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은 올해 안에 새 주인을 찾으면 손실이 없다고 밝혔지만 최근 드릴십 수요가 크게 줄어들어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28일 미주지역 '시드릴'사가 발주한 드릴십 2기의 인도 시점을 선주 요구에 따라 올해 11월에서 2017년 3월로 미루기로 했다. 인도 지연에 따른 금융비용 등은 선주가 부담하지만 잔금을 받기까지 1년 반 이상 더 기다려야 하는 삼성중공업은 울상을 짓고 있다. 국제유가가 바닥을 기면서 드릴십이나 잭업리그(연근해용 다리 고정식 시추설비) 같은 장비 5대 가운데 1대는 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각 조선사가 상당량의 시추 설비를 제작 중이어서 가동률 추가 하락이 불가피한 가운데, 인도 포기나 연기는 물론 신규 발주 중단으로 조선업계의 해양부문 일감 부족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8일 국제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 리서치와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석유시추 설비 가동률이 올 들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잭업리그 가동률은 2012년 91%에서 2013년 93%, 2014년 94%까지 올라갔지만 지난 1월 85%로 뚝 떨어진 뒤 지난 5월 현재 82%에 그치고 있다. 드릴십은 지난해 가동률이 96%에 달했지만 5월 현재 86%를 기록 중이다. 반잠수식 시추선(세미리그)의 가동률도 같은 기간 98%에서 90%로 추락했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글로벌 석유회사들의 자금 여력이 떨어지자 시추작업을 중단하는 사례가 속속 나오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가동률은 당분간 상승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전 세계의 잭업리그와 세미리그, 드릴십 등의 선복량(총규모) 대비 각 조선소가 짓고 있는 수주잔량의 비율이 21%에 이르기 때문이다. 수요는 떨어지는 데 상당한 규모의 새 장비가 계속 쏟아져 나온다는 뜻이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석유 시추설비 가동률이 더 떨어질 수 있다"며 "기존에 건조 중인 설비의 인도 연기 요청이 더 나올 수 있고 신규발주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국내 업체들은 드릴십 등 해양플랜트를 수주할 때 인도 시점에 선박 대금의 60~90%를 받는 헤비테일 방식을 많이 채택했기 때문에 선박 인도 지연이나 포기가 많아질 경우 재무구조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