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가혹행위로 숨진 고 윤승주 일병 어머니의 고통스런 기도] "저들을 용서하소서"… 분노 삼키고 화해의 손 내민 모정

수화기 너머 불안한 목소리… 선임 농간인줄 나중에 알아

가해자들 뉘우침 부족하고 여전히 진실 가려져 있지만

한명이라도 거듭나길 기대

/=연합뉴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고통스런 기도가 이어지고 있다. 늦둥이 외아들 승주가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지 268일째, 갑오년의 마지막 밤에도 어머니는 기도를 올린다. '저들을 용서하시고 영혼을 구해주소서'. 그러나 입술과 달리 속에서는 피눈물이 흐른다. 자식을 죽인 원수를 용서해달라는 어머니의 심정이 오죽할까. 전입후 35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자행된 구타와 가혹행위로 지난 4월 7일 사망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고 민관군병영문화혁신위원회의 태동을 앞당긴 고 윤승주 일병 사망사건의 피해자 가족들은 매일매일 부딪히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2심 재판의 첫 공판이 끝난 29일 저녁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심정을 들어봤다.

먼저 고 윤 일병의 어머니는 "지금 생각하니 모든 게 회한스럽다"고 말했다. 자대 배치받기 전후 승주의 불안한 듯한 목소리와 면회가 자꾸만 무산됐던 이유를 선임들의 농간 탓이라는 점을 나중에야 알았다.


승주는 물론 동료 병사들의 먹거리까지 챙겨 놓고는 면회를 계획했던 4월 5일, '미친 척 하고 찾아갔다면 승주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수없는 책망은 고스란히 한으로 쌓여간다.

면회가 무산된 다음 날, 부대에서 걸려온 느닷없는 전화 이후 기억도 한 순간에 멈춰있다. "의식불명 상태인 승주 옆에서 찬송가를 불러주고 대학교 친구들의 목소리 녹음을 들려주자 기적과 같이 떨어졌던 혈압이 오르고 잠시나마 정상으로 올랐었어요. 그리고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났죠." 어머니의 뇌리 속에 고 윤승주 일병의 마지막은 이렇게 남아 있다.


유가족들은 처음에는 그저 군을 믿고 시키는 대로 따랐다. 아들을 죽인 선임병사들을 위해 기도 드렸다. 용서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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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 윤 일병 매형의 노력에 의해 하나 둘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고 군이 이런 저런 핑계로 공개하지 않던 수사기록을 군인권센터를 통해 확인한 뒤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윤 일병 부모와 두 누나, 매형이 힘을 합쳐 거대한 조직인 군에 맞서기 시작했다. 유가족들은 아직도 가해자들이 진정으로 뉘우치지 않았고 사건의 진실이 가려져 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윤 일병의 어머니는 용서의 기도를 놓을 수 없다. 몇 가지 희망도 없지 않다. 지난 29일 열린 2심 재판 첫 공판에서는 약간의 변화를 눈으로 지켜봤다. 법무장교가 아닌 일반장교가 맡는 심판관(재판장)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윤 일병을 참혹한 죽음으로 내몬 병영폭력에 대한 국민적 분노로 태동한 병영문화혁신위원회의 권고안이 제도로 자리 잡기 전에 육군이 먼저 심판관 제도를 없앤 것이다.

고 윤 일병의 매형은 "(재판부가 전원 군판사로 구성된 덕분인지) 2심 재판은 1심에 비해 나아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승주(고 윤 일병)가 자신을 희생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든 것'이라는 목사님 말씀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희망과 비통함이 섞인 가족들의 기도는 궁극적으로 용서와 화해를 향해 있다. '무엇을 기도하시냐'는 질문에 어머니는 "내가 그들을 용서함으로써 단 한 명이라도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답했다.

원수에 대한 사랑과 상생이며 양극의 용해(鎔 解)다. 우리 사회가 이를 진정한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려면, 구조화한 폭력에서 소중한 가족을 잃는 이들이 다시금 생겨나지 않으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진정한 반성과 제도 개선이 우리 사회의 몫으로 남았다. 미완의 과제만 남긴 채 갑오년 한 해가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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