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찌 됐든 사람들이 자주 오가며 얘기를 나눠야죠."
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만난 율리아 큐브랜드 외교부 한반도 담당 데스크는 '통일을 향해 남북이 지금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를 묻자 이같이 단순하지만 뼈아픈 답변을 했다. 서울경제신문은 광복 70년, 분단 70년인 2015년 남북 관계의 새 역사를 쓰며 한반도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 지난해 말 '통일 25년'을 맞은 독일을 찾았다. 독일 통일의 마땅함을 잘 보여주는 한반도에 독일의 정치인과 석학, 정부 관계자는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 이구동성으로 "일반 시민과 당국자, 남과 북의 경제인, 정치인들이 일상적으로 만나고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이 대화의 문을 열면 70년 분단의 한(恨)이 가장 깊게 서린 이산가족의 만남과 상봉 정례화가 시급하다. 이를 위해 지난 2010년 5·24조치가 천안함 문제 등과 포괄적 협의 속에 풀리고 8·15를 전후로 한 남북공동행사가 개최돼 광복의 진정한 의미를 살려내야 한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신년사로 급부상한 3차 정상회담은 침체된 남북 간 교류협력을 일거에 만회할 묘수이자 북핵 문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북한은 핵 문제에 미국·중국 등 주변국의 우려를 씻어내며 6자회담 재개에 실질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냉랭해진 남북관계에도 10돌을 맞으며 꿋꿋이 성장한 개성공단이 웅변하듯 북한 경제특구의 공동개발 등 남북경협 활성화는 통일의 여정에 버팀목이자 지렛대다.
옛동독 지역으로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으로 유명한 독일 작센주의 주도 드레스덴에서 만난 페터 노트나겔 작센경제개발공사 이사는 최근 한반도 상황을 배우며 놀라웠다고 했다. 그는 "박 대통령 방문 이후 작센주도 한국과 북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며 "그런데 남북이 그토록 왕래가 없고 교류가 힘들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고 말했다. "남북 간 연계 투자는 어렵겠더라"며 고개를 흔든 그는 1949년 동·서독 분단 이후 베를린장벽 붕괴까지 40년이 걸린 것을 상기하며 "1980년대 동·서독 간 교류 횟수나 폭에 비해 지금 한반도는 크게 뒤떨어진 상태"라고 아쉬워했다. 페터 이사 아래에서 실무를 맡은 토마스 크뤼거 프로젝트 매니저는 "대략 따져도 남북 간 인적·물적 교류는 통일 전까지 동·서독의 1,000분의1에도 못 미치는 것 같다"고 했다.
앞서 독일 외교부의 한반도 담당인 율리아 데스크가 "어찌 됐든 만나라"고 조언한 것 역시 외국인의 눈에도 이상하리만치 대화에 담쌓고 있는 남북 상황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연방정부 소속인 정치교육센터의 마르코 미셸 박사는 "조건 없이 자주 만나서 얘기할 때는 강요하지 말고 객관적 정보만 서로 제공하면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지난해 2월 한미 연합훈련 중에도 금강산에서 이산가족이 만났듯 남북이 각각 유연성을 최대한 발휘하면 고위급 협의 등 대화채널은 언제든 상시화할 수 있다. 지속적 대화와 만남을 위해서는 2010년 시행된 5·24조치의 해제가 급선무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정치·제도적 걸림돌이 된 5·24조치에 현명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5·24조치는 시급한 이산가족 상봉 문제 등과 포괄적으로 다뤄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광복 70주년을 호기로 3차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북측이 1일 신년사에서 "정상회담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하자 남측은 "정상회담까지 포함해 모든 의제를 논의하자"고 호응했다. 원혜영 국회 남북관계발전특위 위원장은 "남북 관계가 오래 단절된데다 특수성이 커 실무 접촉으로는 발전에 한계가 있다"며 "5·24조치 해제 이후 올해 정상회담을 열어 6·15 등 기존 합의 확인과 군사적 대립 해소, 경제협력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을동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남북 간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꼭 정상회담이 성사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새해 남북관계 전문가 조사에서 정상회담과 함께 경제·사회 분야의 광복 70주년 공동행사를 지지하는 비율이 "90%에 육박한다"며 언어 등 문화유산 보존 사업과 축구대회, 남북 철도 연결식,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검토 리스트에 올렸다. 이석기 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5·24조치 해제와 정상회담 등으로 남북에 신뢰관계가 구축되면 김 위원장이 개방 확대와 투자 유치에 적극적인 만큼 남포 등 북한 중심부의 경제특구 개발에 남측이 참여해 실질적 경협 확대를 모색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북핵 문제 해결은 미국의 추가 대북제재에서 보듯 직접 당사국인 북측이 남측과 적극적 대화를 통해 외부에 관계개선의 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경제지원과 체제 안정을 담보로 6자회담이 실질적으로 재개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해야 한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남북 간 여러 의미 있는 대화 속에 한미중 공조체제로 6자회담이 열리면 북핵 문제에 진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