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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스마트폰을 가져가면 화면 속에 꽃이 피고, 노를 저으면 수묵화 속 금강산으로 빨려 들어간다. 모시 적삼을 입고 평상에 앉으면 펼쳐진 보리밭 이삭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물소리, 벌레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침상에 누워 하늘의 별을 보고, 기대어 앉아 여행지의 추억을 떠올리며 소나무ㆍ대나무 숲, 넓은 초원의 시원한 풍광 속에 슬며시 잠이 든다.
국립민속박물관이 더운 여름 분주한 일상을 벗어나 잠시나마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쉼' 특별전을 오는 9월23일까지 진행한다. 이번 전시에는 금강산도와 괴나리봇짐ㆍ짚신ㆍ표주박 등 민속자료로 전통을 재해석한 '호박저고리'(금기숙 작), 'jari'ㆍ'larva lamp'(하지훈 작)를 비롯한 현대 작품 등 총 118점을 전시한다. 또 '노 저어 배 타고 금강산 유람하기''연꽃과 모란의 만개'(ARㆍ증강현실)처럼 새로운 매체와 기술을 접목한 6종의 전시물도 함께 소개한다.
전시를 기획한 김희수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전통 전시물을 기반으로 현대 작품과 디지털 미디어를 결합한 형태의 전시를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전시된 유물들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보다, 관객들에게 장르 구별 없이 보다 쉽게 감성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에서 힐링할 수 있는 여가 개념이다. 총 3부로 이뤄진 전시는 서서 앉아서 누워서 즐길 수 있게 했다. 김 연구사는 "앞으로는 이러한 경향과 시도가 박물관의 역할로서 중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 1부는 '푸른 그늘 실바람에 새소리 들레어라'라는 제목으로, 선비가 괴나리 봇짐을 매고 금강산과 명승지 여행을 떠나는 여정을 보여준다. 괴나리 봇짐, 곰방대, 여행용 지도, 찬합, 표주박 등 당시 선비들이 간단히 짐에 넣었을 법한 물건들이 전시돼 있다. 길을 나서면 길가의 꽃들이 가장 먼저 나그네를 반긴다. AR(증강현실) 기술을 적용해 스마트폰을 가져다 대면 3D 영상이 비치며 꽃이 활짝 피어난다. 큰 프로젝트 화면 앞에는 뱃머리와 노가 설치돼 있다. 노를 저으면 수묵화 속에 들어가듯 풍광들이 뒤로 밀리며 금강산 유람을 떠난다. 박물관이 소장한 30여점의 그림을 적절히 섞은 화면은 노를 젓는 속도에 따라 배가 나아가는 속도도 달라지게 설정돼 있다.
2부 '홑적삼에 부채 들고 정자관 내려놓고 있자니'는 집에 돌아와 거문고와 바둑판을 벗 삼아, 등등거리(등나무 가지를 구부려 만든 일종의 조끼로 적삼 밑에 받쳐 입으면 바람이 잘 통해 시원하다) 위에 모시적삼을 걸치고 평상에 앉아 쉬는 공간이다. 정면의 프로젝터가 쏘는 화면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밭이 펼쳐지고, 평상 아래서 시원한 바람과 물ㆍ개구리 소리가 들려온다.
마지막 관에는 어두운 실내에 설치된 긴 파노라마 화면에 7분 분량의 대숲ㆍ소나무숲ㆍ빽빽한 삼림 속에 누워있는 듯한 자연풍광 화면이 펼쳐진다. 눕다시피 앉을 수 있는 쇼파가 군데군데 놓여 있고, 한 켠에는 아예 누울 수 있는 나무 침상이 넓게 설치돼 있다. 침상에 누우면 천장에 설치된 화면으로 별 밝은 밤, 처마 사이로 보이는 하늘 등을 번갈아 가며 비춘다. 대나무 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 속에 기분 좋은 나른함, 가벼운 졸음이 몰려왔다. 조금 여유로운 점심시간이라면 가벼운 힐링과 짧은 눈 붙임의 여유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