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가의 낮과밤] 3. 헤지없는 헤지펀드

단기 차익을 겨냥해 움직이는 헤지 펀드는 최근 국제 금융시장을 교란시킨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97년 태국 바트화 절하로 촉발된 신흥시장의 외환위기 뒷편엔 어김없이 이들 헤지 펀드가 자리잡고 있었다.헤지 펀드는 미국 증시가 활황세를 기록했던 90년대 들어 각광받기 시작했다. 미국의 최대 뮤추얼 펀드인 피델리티사의 마젤란 펀드를 운용하다 실적 부진으로 쫓겨났던 제프리 비닉스같은 펀드 매니저부터 이제 대학을 갓나온 청년들까지 너도나도 헤지펀드에 뛰어 들었다. 헤지 펀드가 운용 측면에서 매우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잘만하면 두둑한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데다 총자산의 12%에 달하는 관리비, 수익의 20% 정도인 실적 수당까지 한꺼번에 손에 쥘 수 있다. 헤지 펀드는 설립 절차도 매우 간편하다.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따로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할 필요가 없고 투자자를 공개적으로 모집할 수 있다. 그래서 헤지 펀드가 처음 출범할 땐 펀드 매니저 자신과 가족 혹은 친지들의 돈을 끌어모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투자자는 100만달러 이상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거나 연간 소득이 20만달러를 넘어서야 한다. 헤지 펀드가 그동안 증권당국의 규제를 받지않은 것도 이들 부유층을 따로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헤지 펀드는 보통 유한(有限) 파트너쉽(LIMITED PARTNERSHIP)으로 운영된다. 일반 투자자는 유한 파트너가 되고, 헤지 펀드 운영자가 무한 책임을 지는 파트너로 이루어진다. 이들 헤지 펀드는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투자전략과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소로스의 퀀텀 펀드처럼 금리와 환율 등 특정국가의 경제정책 변화를 겨냥하는가 하면 근래 들어 두가지 상품의 가격변동을 이용한 새로운 투자방법도 등장했다. ★표 참조 지난해 파산 위기에 직면했던 롱 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도 이런 식으로 투자하다 결국 낭패를 당하고 말았다. LTCM은 자본금이 70억달러에 불과했지만 유가증권을 담보로 1,000억달러가 넘는 거액을 빌려와 채권과 파생상품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창업자인 존 메리웨더 등은 국채와 다른 채권가격의 차이가 역사적 평균치로 좁혀진다는 가정 아래 투자했지만 정작 러시아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하자 오히려 국채값은 오르고, 다른 채권가격은 떨어졌다. 확률상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은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과도한 레버리지를 동원한 투자행태의 페해는 시장이 흔들릴 때 어김없이 나타났다. 지난해 8∼9월중 뉴욕 증시가 갑자기 9,300대에서 7,500선으로 급락했던 것도 헤지 펀드들이 마진을 막기 위해 보유한 주식을 한꺼번에 내다 팔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미국 의회는 헤지 펀드에 대출해주는 은행들을 대상으로 헤지 펀드의 투자현황을 투명하게 파악케 하는 등 직·간접적인 규제방안을 마련중이다. 모두가 LTCM의 파탄으로 뒤늦게야 깨닫게 된 값비싼 교훈인 셈이다. 이 때문에 극소수의 헤지 펀드가 전세계를 휘젓고 다니면서 초래된 「카지노 자본주의」는 점차 설땅을 잃어버리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 금융계의 약한 고리를 맹공해 막대한 돈을 챙겨온 조지 소로스조차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금융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일정 수준의 규제를 주장하고 나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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