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9년 가을, 복학 이후 정체성조차 자신 없어 하던 키만 큰 젊은 청년이 아이들과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청년은 그 후로도 수시로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즐거워하며 숲이 꽤 울창한 그 곳, 청계산 길목의 보육원을 자주 찾고는 했다.
사람들은 간혹 그 청년을 보며 참 좋은 일을 한다고 했지만 청년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귓가로 흘렸다. 만 22년이 넘게 아이들과의 행복한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 청년은 20대를 보내고 어느덧 사십대 중반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사회인으로 살고 있다. 때로는 김장과 집수리, 문화 나눔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만남을 이어간다. 보육원에서 만난 아이들은 어른이 됐고 함께하던 대학생은 같이 세상을 이야기하는 친구가 돼 살아가고 있다. 그 청년은 행복하다.
좀 길게 살아온 날을 이야기한 이유가 있다. 나눔은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연말연시 광화문 사거리의 사랑의 열매 온도탑을 보거나 구세군 냄비의 모금함을 보면 우리 사회는 일정한 시기에 나눔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음을 느낀다. 이러한 나눔은 의도하지 않는 나눔의 왜곡을 낳는다. 특정 시기에 나눔을 실천하면 된다는 나눔의 집중현상은 우리 사회의 공동체 유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땅의 소수자인 빈곤한 장애인ㆍ노숙자ㆍ아동ㆍ독거노인은 365일 상시적으로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효율적으로 사회복지정책을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개인은 일상에서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나눔을 통해 이웃과 소통하고 건강한 사회를 실현할 때 복지사회는 만들어진다. 아울러 기업도 연말이 되면 기업홍보 차원에서 일회적으로 사회공헌사업을 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고민하는 지점, 국가와 개인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대한 사회공헌으로 차별화하면서 기업문화와 연계된 봉사활동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국가와 기업, 개인이 나눔을 실질적으로 실천할 때 우리 사회는 보다 건강해지고 선진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 나눔을 일상화하고 지속화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