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방과 후 학교의 그림자


지난 1964년 12월7일 서울지역 전기 중학교 입시 자연과목 18번 문제는 엿 만드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엿은 찹쌀에 엿기름을 넣어서 만들게 돼 있는데, 엿기름 대신에 넣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었다. 서울시 공동출제위원회는 보기 1번의 '디아스타제'가 정답이라고 했으나 2번의 '무즙'을 정답이라고 쓴 학생도 있었다. 1점 차이로 명문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게 된 38명이 소송을 제기했고 학부모들이 무즙을 써서 엿을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1965년 3월30일, 서울고등법원 특별부가 무즙도 정답으로 봐야 하며, 이 문제로 인해 불합격된 39명의 학생을 구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일부선 교장 부업등으로 변질 이 사건은 '치맛바람'이라는 말을 만들어낼 만큼 지나친 교육열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회자된다. 중학교 입시 과열이 문제가 되자 정부는 중학교 입학시험을 폐지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의 과열도 문제가 되자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폐지하는 고교평준화제도를 도입하게 됐다. 자식을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학부모들은 등골이 휘다 못해 부러질 정도였으니 과외비 조달을 위해 아버지는 대리운전을, 어머니는 파출부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교육비의 부담이 많다 보니 부모의 소득에 따라 학생의 대학진학이 좌우되는 현상으로 나타나게 됐고, 저소득층의 불만도 만만치 않았다. 이처럼 사교육을 둘러싼 문제가 나타남에 따라 다양한 학습욕구를 충족하고 사교육비를 경감해 사회양극화에 따른 교육격차를 해소하여 교육복지를 구현해야 한다는 사회적 주장이 제기됐다. 1995년 5월31일 교육개혁안에 따라 2003년까지 특기적성교육 등 방과 후 교육활동이 시작됐고, 2009년부터 전국 초중고 학교의 99.9%가 참여하고 있다. 방과 후 학교의 운영은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 또는 자문을 받아 학교장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경우와 인접 대학이나 비영리단체 또는 기관에 위탁하는 방식이 있다. 운영시간, 프로그램 개설, 강사채용, 강사료 및 수강료, 예산편성 및 집행, 프로그램 위탁 등을 할 수 있다. 학교장은 교육감이 수립한 시ㆍ도별 방과 후 학교 운영계획에 따라 외부기관에 프로그램을 위탁 운영할 수 있다. 강사채용은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학교장이 계약을 체결한다. 방과 후 학교는 이제 어느 정도 정착되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듯하다. 그런데 방과 후 학교가 당초의 취지와는 달리 일선학교의 보충수업 내지는 진도 나가기 수업으로 변질되는가 하면 일부 사람의 이익 챙기기 수단이 되기도 한다. 강사 채용의 대가로 금전이 오간다거나 중부지방 어느 도시에서와 같이 교장의 부업쯤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들은 먼저 강사가 되고 싶어하는 지원자에 대해 생명보험에 가입을 시킨 후 가입자의 명단을 확보한다. 학교장은 그 생명보험에 가입한 사람 중에서 강사 채용계약을 체결한 뒤 계약서는 보험회사의 모집인이 모아서 보관한다. 이익 챙기기 수단 돼선 안돼 이렇게 되면 강사는 보험모집인의 요구에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방과 후 학교의 특기적성 수업은 인원수가 과다할 경우에 원활한 수업을 하기가 쉽지 않지만 학교에서는 100여명씩 편성하여 강의료 수입을 올린다. 학교는 강사 개인의 구좌로 강사료를 입금시키면 학교로서는 아무런 책임을 질 일이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듯 보인다. 강사는 학교로부터 받은 강사료 전액을 즉시 보험모집인에게 입금해야 한다. 이들은 입금된 강사료 중에서 절반은 소개비 명목으로 떼고 절반 정도만 강사의 구좌로 되돌려 준다. 생명보험 가입실적도 높이고, 강사료에서 부당이득도 챙기니 말 그대로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다. 감독기관이 알고 있는지는 모르나, 그 지역 학교의 방과 후 강사의 입출금 구좌를 조사해 보면 재미있는 일이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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