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전 의장은 이날 아부다비국립은행(NBAD) 주최로 금융인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두바이에서 열린 강연회에 참석해 "일본은 아베노믹스와 더불어 약간의 강세를 띠고 있고 미 경제는 올해 3%의 성장궤도에 들어서는 등 주택을 중심으로 더 강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유럽도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개선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버냉키의 공개석상 연설은 퇴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버냉키는 "오는 7월 종료되는 이란 핵 협상이 세계 경제의 열쇄가 될 것"이라며 "(협상이 실패하면) 세계 경제가 매우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해 "매우매우 암담한 시절"이라고 회고하며 더욱 공격적으로 시중에 유동성을 풀었어야 했다는 후회 섞인 소회도 밝혔다. 버냉키는 "(연준 의장 자리에서 물러난 만큼) 이제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며 "당시 연준은 위기완화를 위해 매우 공격적이었지만 통화정책 측면에서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여지가 있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버냉키는 "리먼브러더스 붕괴 직전 미국은 지나친 자신감을 가졌다"며 "너무 뻔한 소리지만 우리가 맨 처음 받은 교훈은 미국도 금융위기로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 위기를 맞아 미 통화정책의 수장으로서 겪었던 고충도 토로했다. 버냉키는 "나는 개인적으로 고용·물가에 맞춰진 연준의 임무 외에 일반가정을 돕고 싶었다"면서도 "금융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대형 금융기관에 대한 구제금융을 실시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금융기관 구제금융은 일반국민을 보호하는 게 본래 의도였지만 소상공인 등을 돕지 않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비판 때문에 매우 어려운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시장과 소통의 어려움도 회고했다. 버냉키는 "수많은 투자자들은 나의 발언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분석했다"며 "메시지를 단순화하려 했지만 지나치게 단순화하기도 어려웠다"며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학자이기 때문에 가설에 익숙하다"며 "시장은 가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걸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실토했다. 로이터는 한 소식통을 인용해 버냉키의 연설대가는 최소 25만달러라고 전했다. 전임자인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이 2008년 아부다비 금융 회동에서 받은 액수와 비슷하다. 버냉키의 연설은 5일 남아프리카공화국, 7일 휴스턴에서도 예정돼 있다.
한편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이날 회동에서 버냉키 전 의장 시절의 통화정책에 대해 날을 세워 관심을 끌었다. 그는 "완화적 통화정책은 필요했지만 이제는 경제적 효과도 떨어지고 있다"며 "초저금리의 후유증이 경제 전반에 충격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