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베이징 APEC의 정치경제] 한국, 눈치보기? 꽃놀이패?

시간 연연않고 국익 우선 불구 미·중 사이서 선택 압박 거세

加·濠 개별 FTA 비준 총력 속 블록화 전쟁서 각개 전투 응수

다자간협상때 목소리 높여야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이 지난달 26일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기자실에서 ''한중 FTA 제13차 협상''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서울경제DB


거대 경제권인 아시아태평양을 두고 벌어지는 G2(미국·중국)의 패권 다툼에 통상 허브를 지향하는 한국이 딜레마에 처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막판 협상을 앞둔 정부는 "시간에 연연하지 않고 국익을 우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G2의 아태 전략이 구체화할수록 양자택일의 압박은 점점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이 고래 싸움을 할 때 우리는 중국과의 FTA 타결, 호주와의 FTA를 발효하며 경제블록화(메가FTA) 전쟁에 각개전투로 응수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G2 구도의 경제블록화를 논의하고 있는 국가들과 개별 구속력이 높은 FTA를 체결한 상태이면 다자간 협상에서도 우리 목소리를 높일 수 있고 설령 메가FTA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경제적으로 큰 불이익은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다음달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최고경영자(CEO) 회의에서 첫 번째 주제로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를 올렸다. FTAAP는 캐나다와 멕시코 등 APEC 회원국 21개국과 FTA를 체결하는 다자간 협정으로 중국이 주도하는 기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확장판인 동시에 미국 중심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대응 카드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최대 승자인 중국은 이번 APEC에서 FTAAP 띄우기에 나서면서 세 확장에 열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최대 동맹국인 우리로서는 셈법이 그만큼 복잡해졌다는 의미다. 중국 주도의 경제협력체 창설이 아직 멀고 실체도 분명하지 않지만 참여 가능성을 완전 배제하기는 어렵다. 중국은 우리나라 전체 교역의 4분의1을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와 관련해 "조건만 맞으면 참여 못할 게 없다"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베이징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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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FTAAP 대상 회원국이 미국 주도인 TPP 국가들과 상당수 겹친다는 점이다. 한국은 지난해 말 TPP 참여를 전제로 관심을 표명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 TPP 참여국 협의 과정을 지켜보며 산업별 영향 등을 따져본 뒤 본격 참여를 선언한다는 게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외교·안보적으로 밀접한 미국이 주도하는 TPP 참가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이 동북아 경제 주도권을 놓고 패권전쟁을 벌인다면 우리로서는 오히려 TPP·FTAAP의 주요 대상국들과 양자 FTA의 결실을 거두는 게 전략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다자간 무역협정이 개별 FTA보다 개방 수준이 높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미 우리가 TPP·FTAAP에 들어간 주요 나라들과 FTA를 체결했다면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메가FTA에 불참하더라도 경제적 손실이 적다.

G2의 선택 압박은 역설적으로 꽃놀이패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중 FTA는 중국이 TPP를 견제할 수 있고 미국은 우리에게 TPP 참여를 더 구애하도록 하는 전략적 양다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7일 국정감사에서 "APEC 정상회의 때 한중 FTA 가서명을 할 것이냐"는 의원의 질문에 "가서명은 못할 것이다. 시한을 두지 않고 협상 내용에 충실하려고 한다"고 답한 바 있다. 한중 FTA는 중국이 우리보다 연내 타결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우리가 미국과 중국의 싸움을 두고 TPP 등의 참여 여부를 고민하기보다는 개별 참여국과의 FTA에 주력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밝혔다.

국회에 묶인 호주·캐나다와의 FTA 비준 처리도 시급한 과제다. 호주·캐나다 FTA를 전략적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주는 TPP와 RCEP 양쪽에 발을 담근 국가다. 김영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지역무역협정팀장은 "중국이 주도하는 RCEP는 아세안 국가들의 개발 수준이 달라 높은 수준의 FTA는 어렵고 FTAAP는 아직 아이디어 차원"이라며 "급물살을 탈 수 있는 TPP에 참여해 역내 관세·원산지표기 등 새로운 국제 통상 표준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 목소리를 내고 실익을 챙겨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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