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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시장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가진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을 살리기 위해 많은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시장이 기대했던 '알맹이'를 내놓는 데는 실패했다.
이례적으로 높은 관심이 쏠렸던 2일 드라기 총재의 기자회견은 시장에 '쇼크'를 몰고 왔다. 지난달 26일 "유로존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고 약속한 드라기 총재에 대한 기대감은 고스란히 그와 ECB의 리더십에 대한 실망과 유로존 위기 재연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오히려 드라기 총재는 이날 "(자신의 발언에 대해) 엄청난 관심이 쏟아져 놀랐다"고 고백했다.
시장은 이날 금융통화정책회의 결과에 대해 ECB의 국채 직접매입 결정, 유로존 은행에 대한 추가 장기저리자금대출, 유로안정화기구(ESM)에 대한 은행면허 부여 등 온갖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드라기 총재의 입에서 당장 실행력을 갖춘 조치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드라기 총재는 유로존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을 불식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국채금리가 유로의 미래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각국 정부는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채권시장에서 활용할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ECB가 공개시장 조치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며 ECB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 재정위기국의 국채를 직접 사들이겠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시사하기도 했다.
또 "ECB 집행이사회가 통화정책이 제대로 시장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추가적인 비전통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국채매입 외에 은행권에 대한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을 추가 실시할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하지만 이날 드라기 총재의 입에서 위기대응 조치의 구체적인 내용과 시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시장개입 조치의 시행 시기에 대해 "우리가 오늘 발표한 것은 강력한 지침"이라면서 "자세한 내용은 수주 안에 완성될 것"이라고 말해 ECB가 또다시 시간을 끌며 위기를 키운다는 인상을 시장에 남겼다.
유로존 경제상황에 관해서는 "경제성장이 취약한 상태이고 금융시장의 긴장과 고조된 불확실성이 자신감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ECB는 기준금리를 현행 0.75%로 동결시키기로 했다. 드라기 총재는 기준금리 동결 결정에 대해 "집행이사회에서 금리인하를 논의했지만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면서 향후 추가적인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는 데 그쳤다. 이에 앞서 통화정책회의를 가진 영국 중앙은행도 기준금리를 동결시키고 양적완화도 기존 정책을 유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확산되는 경기침체와 재정위기 확산에 대한 우려 속에서도 유럽 중앙은행들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데 대해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다. 특히 ECB 드라기 총재에 대한 실망감은 '쇼크' 수준의 증시 급락으로 이어졌다.
이날 드라기 총재의 회견 전 한때 1% 안팎으로 상승했던 유럽 주요국 증시는 그의 발언 이후 곧바로 급락세로 돌아서 스페인 증시는 한때 5%까지 급락했으며 스페인 10년물 국채금리도 기자회견 직후 디폴트(채무불이행) 수준인 7%를 웃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