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가 12년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지난해 물가 대란에 따른 기저효과 탓이 크고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물가와의 격차는 더욱 커져 '허구 물가'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욱이 최근 전기요금과 가공식품 가격이 줄줄이 인상됐고 태풍 볼라벤과 덴빈의 여파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 조짐을 보이는 등 추석 물가에도 초비상이 걸린 상태다.
3일 나온 통계청의 지난 8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2%로 2000년 5월(1.1%) 이후 12년 3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지표만 봤을 때는 전달의 1.5%에 이어 두 달 연속 1%대를 유지하며 안정세에 접어든 모습이다.
하지만 서민들에게는 이 같은 물가지표가 허구처럼 느껴진다. 우선 8월 소비자물가가 12년여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말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물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면 올해에는 자연스럽게 물가가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실제 지난해는 고유가와 집중호우, 전세대란 등의 여파로 1년 내내 물가가 고공행진을 기록했다. 특히 비교 시기인 지난해 8월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7%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물가가 12년 3개월 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 힘들다.
당장 이번 물가지표를 봐도 농산물ㆍ석유류ㆍ가공식품 등 서민들의 실생활과 밀접한 품목의 가격은 모두 줄줄이 올랐다. 지표상 물가는 낮아도 서민들의 체감물가가 높은 이유다. 생활물가지수는 식품 중심의 상승세에 따라 전월보다 0.7% 뛰었다. 채소·과일 등 신선식품지수는 4.6% 급등했고 농산물(4.4%), 석유류(1.8%), 전기·수도·가스(0.8%)도 전달에 비해 상승했다. 가공식품 가격도 오름세다. 부침가루(13.2%), 국수(6.2%), 혼합조미료(3.9%) 등이 전월보다 올랐다.
문제는 추석을 앞두고 이들 품목의 가격이 다시 한 번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태풍 볼라벤과 덴빈의 영향으로 전복 등 양식 어패류가 폐사하고 강풍에 과일이 떨어진 점을 고려하면 추석 성수품의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 가공식품ㆍ석유제품 등도 국제곡물가격과 국제유가 상승분이 본격적으로 반영되는 이달부터 추가로 상승할 여지가 높다.
이에 따라 정부는 추석 물가 안정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성창훈 재정부 물가정책과장은 "정부 비축물량을 활용해 추석성수품을 추석 전 2주간 집중 공급하고 직거래 장터, 특판장 운영 등을 통해 가격을 안정시킬 것"이라며 "수확ㆍ출하 지연에 따른 가격불안에 대응하고자 농협ㆍ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인력 지원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