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가업승계 지원 오해와 진실


최근 명문 장수기업의 원활한 가업승계를 지원할 목적으로 가업상속 공제를 확대하는 내용의 '상속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이 법의 개정취지에는 기업이 가업을 승계할 때 직면하는 과중한 조세부담을 덜어줌으로써 명문 장수기업의 탄생을 촉진함과 동시에 경쟁력을 갖춘 한국형 히든챔피언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는 중견·중소업계의 열망이 들어 있다.

경제활력 유지 지속 성장에 기여


가업승계에 따른 조세부담에 대해서는 승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다. 가업승계는 단순히 기업이라는 재산을 차세대 경영자에게 물려주는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책임과 기업가정신의 계승, 기업에 체화된 기술과 노하우 이전, 양질의 일자리 창출·유지 등으로 국민경제의 활력 유지와 지속성장에 기여한다는 데 의미가 크다. 창업보다 가업승계에 의한 일자리 창출 효과가 더 크다는 외국의 연구 결과도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유럽연합(EU)이나 독일·일본 등의 경우에는 가업승계를 제2의 창업으로 보고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고 있다.

반면 가업승계에 대한 세제지원이 부자감세의 한 유형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가업상속 지원 대상이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생산활동에 직접적으로 공여되는 기업재산으로 엄격히 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상속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건실한 성장세를 유지해온 독일에 히든챔피언과 명문 장수기업이 많은 요인의 하나로 원활한 가업승계를 들 수 있다. 기술중시의 장인정신이 강한 독일에서는 가업을 잇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전통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 또한 일찍부터 가업승계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종합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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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가업상속과 관련한 전폭적인 세제지원이다. 가업승계 시점에 사업용 자산에 대한 상속세 징수를 유예하고 7년간 사업을 유지하면서 임금 총액의 700% 이상 지급하는 경우에는 세금 전액을 감면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가업의 사전상속에 해당하는 증여의 경우도 상속과 동일하게 취급한다. 기업규모에 대한 제한도 두고 있지 않다.

제2의 창업에 해당하는 승계시점에는 보다 나은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구조조정과 새로운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안정적인 환경조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기에 과다한 세금으로 기업의 체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해당 기업은 물론 국민경제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상속보단 증여 지원해 승계 활성화를

오히려 승계과정에서의 조세부담을 덜어줌으로써 승계가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기업이 성장 발전하면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기업활동에 수반되는 법인세·부가가치세·근로소득세 등을 납부한다면 국가재정 측면에서는 물론 생산적 부의 재분배라는 관점에서도 더 큰 효과를 거둘 것이다.

우리나라는 가업상속 공제요건도 너무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어 이를 충족하는 기업들이 연간 50여개 정도에 불과한 실정으로 개선이 필요하다. 요건을 완화하고 단순화해 많은 기업이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되 확실한 사후관리를 통해 '도덕적 해이'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특히 상속인 1인이 가업 재산 전체를 상속받을 때에 한해 상속공제를 허용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2개 이상 법인을 소유한 경우 가족 구성원들이 사업을 나눠 맡을 수도 있고 하나의 기업을 복수의 가족 구성원들이 공동 소유하고 경영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현행 가업승계지원 제도는 사후(死後) 승계에 해당하는 상속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사전증여와 관련한 지원은 미미한 실정이다. 하지만 가업승계는 창업자가 살아 있을 때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원활한 가업승계를 통해 기업의 지속발전을 돕고자 한다면 사전증여 방식에 의한 승계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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