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문의 성역`으로 불렸던 정치자금을 놓고 청와대와 재계 사이에 냉기류가 확산되는 조짐이다.
재계는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자금에 대해 `기업의 자발적인 선 공개`방식을 제시하자 그 동안 정부 정책에 대해 쌓아왔던 불만들을 쏟아내며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총체적 불신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말로만 `국민소득 2만달러`를 운운하며 기업들의 경영을 좀먹는 요인으로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나라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모르겠다(현명관 전경련 부회장)”는 비판까지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유화-대립`의 전선을 오가던 청와대와 재계간의 관계가 자칫 최악의 상황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기업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달라= 21일 예고에 없이 전경련 기자실에 들른 현명관 부회장은 누적된 불만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현 부회장은 이날 “기업 경영에만 전념해도 경제난국을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는 판인데 정부와 정치권은 발목만 잡고 있다”고 불편해 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날 대선자금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면서 “재계가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한 것에 대한 재계의 감정을 한꺼번에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A그룹 고위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강조한 취지를 떠나 공개 방식에 기업을 거론한 것은 정치권 문제를 기업들에게 떠넘기는 인상을 준다”며 “받은 쪽에서 알아서 풀 문제이지, 준 쪽에서 고해성사하라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재계의 불만은 현 정부 최대 화두로 떠오른 `국민소득 2만달러론`에 까지 이어졌다. 현 부회장은 “국민소득 2만달러의 주체는 기업이며 정부는 서포터(지원자)일뿐”이라며 “정부와 정치권이 착각하고 있는 것같다”고 일갈했다. 그는 “한쪽(공정거래위원회)에선 투자 의욕을 죽이고 다른쪽(청와대)에선 성장을 얘기하는 것은 모순된 것”이라고 정부 정책을 공박했다.
◇나라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모르겠다= 현 부회장은 “기업 얘기를 과장, 엄살로 듣지 말고 현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달라”고 호소했다. “나라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모르겠다”는 자조 섞인 발언까지 터져 나왔다.
현 부회장은 노ㆍ사 최대관심사로 떠오른 주5일근무제와 관련, “(불만이 있더라도) 정부의 입법안을 받아들이겠으니 하루빨리 정리(Settle Down)해달라”며 `무조건 수용` 방침을 밝혔다. 한마디로 기업은 손해를 감수하겠으니, 정부와 정치권은 제 할 일이나 제대로 해달라는 것이다.
최근 거론되는 하반기 경제 회복론에 대해선, “희망사항일 뿐”이라며 이례적으로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노사 관계 모델에 대해서도 “웬 엉뚱한 네덜란드 모델이냐”고 직설적으로 공격했다.
<김영기기자 yo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