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8월 12일] <1472> 금융실명제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 이뤄집니다.’ 1993년 8월12일 오후7시45분, 김영삼 대통령이 발표한 특별담화문의 골자다. 1982년 장영자 어음 사건을 계기로 도입하기로 했으나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해 수 차례 연기돼온 금융실명제가 전격 실시된 것이다. 정보가 미리 새나갔다는 정황도 없지 않지만 금융실명제 실무팀은 철저하게 보안을 지켰다. 과천의 한 아파트를 빌려 합숙하면서 가족에게도 외국 출장을 간다고 속일 정도였다. 시장은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을 동원한 YS다운 전격발표에 바로 얼어붙었다. 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저녁에 발표한 금융실명제의 파장은 이틀간 종합주가지수를 59.27포인트 하락한 666.67포인트로 끌어내렸다. 반대로 금값은 뛰었다. 사채시장에서도 금리가 치솟았다. 폭락세는 주말을 지나면서 수그러들었다. 정부의 초대형 증시부양책 발표 임박 풍문과 실명제로 갈 곳을 잃은 지하자금이 결국 주식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대가 맞물려 시장은 안정을 되찾았다. 실명제 시행 직후 2개월의 의무기간 동안 실명으로 전환된 가명예금은 2조7,604억원. 가명으로 파악된 예금의 97.4%가 실명전환을 마쳤다. 실명으로 전환할 경우 5,000만원 한도까지는 출처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방침에 따라 거액 가명 예금주들이 은행과 투자금융회사(단자사) 등에서 예금을 쪼개는 편법이 일어났을 뿐 금융실명제는 우려와 달리 자리를 잡았다. 금융실명제 실시 17년. 아직도 투명거래의 길은 한참 남았다. 차명계좌의 존재가 그렇고 차떼기 같은 불법 정치자금이 그렇다. 일각에서는 외환위기를 부른 원인의 하나로 금융실명제를 꼽았지만 과연 그런가. 금융실명제와 검은 돈, 둘 중 어느 것이 경제에 해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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