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달리기 전 예수의 `마지막 3일간`을 조명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Passion of the Christ))가 내달 2일 국내서도 개봉된다.
`패션…`은 반유대주의 논란 등을 불러일으키며 미국에서 개봉, 3주 연속 현지 박스오피스 1위를 점유하며 국내에서도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작품. 보수파 카톨릭 신자로 알려진 배우 멜 깁슨이 제작비 2,500만 달러를 대고 시나리오를 공동집필 했으며, 감독과 제작도 겸했다. 성경 역사를 최대한 복원한다는 생각으로 이탈리아의 로마와 마테라에 2,000년 전 예루살렘 시가와 똑같은 세트를 지었고 의상과 소도구 등도 꼼꼼하게 제작했다. 대사도 예수와 제자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고대 아람어를 쓰고 로마인들은 라틴어를 구사한다.
마지막 새벽기도의 현장이었던 겟세마네 동산에서 시작되는 영화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 4복음서에 중복, 혹은 단독 기록된 내용들을 다소 우직하게 묘사해 나간다. 예수가 로마 군인에게 붙잡히는 장면에서 처형까지의 과정과 예수의 회상, 주변 인물들이 기억하는 예수의 모습 등이 교대로 엮어진다. 채찍에 맞아 살이 찢기고 손에 대못이 박히는 등의 장면도 사실적으로 묘사됐다. 고난 장면의 묘사에 있어서는 역대 예수의 생애를 다룬 어떤 영화보다도 사실성이 돋보이는 편.
예수는 그가 기도해 뽑은 12제자 중 하나인 유다에 의해 은전 30냥의 대가로 배신 당한다. 그를 붙잡은 인물들은 당대 유대교 지도자들로 유월절 군중의 함성과 함께 예루살렘에 입성했던 예수에게 정치적 반감과 위기 의식을 느낀다. 사형권을 지닌 로마인 총독 빌라도는 되려 집행을 주저하지만, 성이 오를 대로 오른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입김에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게 된다.
다분히 예수의 인성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그가 남긴 평화의 메시지를 되새기게 하기엔 적절한 수준이다. 갖은 모욕과 굴욕을 당하면서도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기도하는 예수의 모습은 오랜 시간 묘사된 로마 군인들의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모습과 적절한 대비를 이룬다.
그러나 영화에서 알려진 것 만큼의 영성의 깊이를 찾아보기는 사실상 어렵다. 교회적 구속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처형 직후 성소의 휘장이 찢기는 장면 등은 보이지 않고 `성서 이외의 대사`를 다듬어간 방향에서도 신성을 느끼게 할 여지가 다소 축소돼 있다. 수난과 구원의 메시지를 연결시키는 데는 일면 못 미친 덕에 묘사된 고난의 강도가 크면 클수록 되려 더 큰 고통을 맛봤을 역사적 인물들도 떠올리게 된다. 특히나 기독교 문화권이 아닌 우리의 배경을 더할 때 영화는 예수를 화해와 평화를 전한 인사로만 인식케 할 개연성도 내비친다.
처형지 골고다 언덕을 향하는 여정 등에서 영화는 카톨릭 적인 색채도 짙게 드러낸다. 예수가 성모 마리아와 만나거나 베로니카의 수건에 얼굴을 닦은 장면 등이 그것으로 신약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는 부분이다.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하는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마지막 부활 장면에서도 `벌거벗은` 예수가 무덤으로 사용된 동굴 밖으로 걸어나가는 모습을 그려냈다.
<김희원기자 heew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