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부 장관 취임 초 그는 ‘마을 이장’, ‘농민 단체장’ 등 특이한 이력으로 화제를 모았다.
실제 장관에 오르기까지 그의 삶을 보면 농촌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군 제대 후 박 장관은 자신의 전공(임학과)을 살려 소 키우기에 도전했다. 3년 고생 끝에 16만평 농장에서 소 160두를 키우는 부농의 대열에 올랐다. 하지만 86년 소 값 파동으로 시련을 겪었고 이 때부터 농촌 현실에 눈을 뜨면서 농민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88년 농어민 후계자회에 가입했고 그 이후 남해군 국제화추진위원, 농정심의위원 등을 맡았다. 98년에는 협동조합 개혁 문제를 제기하며 농민 운동을 주도,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기도 했다. 특히 2000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회장 시절에는 농가부채 특별법 제정에 앞장 서기도 했다.
그는 장관이 된 요즘도 매주 2~3회씩 농촌 현장에 가서 농업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또 만나는 사람 마닥 ‘밥 한 그릇씩 더 먹어야 된다’는 당부를 절대로 잊지 않는다. ‘밥 많이 먹느냐’가 대화의 첫 주제이다 보니 그에게 ‘쌀 전도사’라는 칭호까지 붙었다.
◇약력
▦55년 남해 생 ▦창선고ㆍ경상대 임학과 ▦2000~3년 한국농업경영인 중앙연합회 회장 ▦2000~3년 한국농어민신문 대표이사 ▦04년 열린우리당 농림특별위원회 위원장 ▦04년 열린우리당 당 의장 농업특보 ▦04년 17대 국회의원 ▦05년 1 ~ 농림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