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들의 해외진출 못지않게 활발한 것이 예금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 등 이른 바 금융관련 공기업들의 해외사업 분야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발 아래 불을 끄기도 버거웠던 이들은 이제 5년간 익힌 금융 노하우를 중국, 일본 등 다른 나라에 전수하는 입장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 했다. 단순히 소극적인 업무교류에 머물던 사업내용도 이제 수익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의 해외진출은 금융관련 공기업 가운데서도 가장 눈에 띈다. KAMCO는 외환위기 당시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을 정리,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 하는 `국내용`금융기관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노하우를 해외에서 활용해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 뿐 아니라 최근 체코, 불가리아 등 동유럽 지역까지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는 중이다.
리만 브라더스가 추산하는 세계 부실채권 규모는 약 5조~6조 달러. 이 가운데 아시아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부실채권은 전체의 절반이 넘는 2조6,000억 달러나 된다. KAMCO는 이 같이 막대한 규모의 부실채권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 우선 한국이 부실채권 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국가에 보다 쉬운 길을 가르쳐 줄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수익성이 낮은 컨설팅 작업부터 시작해 KAMCO에 대한 신뢰감부터 쌓은 뒤 장기적으로는 부실채권을 직접 인수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포석이다.
KAMCO가 5년간 부실채권 정리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곳은 10월말 현재 10개국 15개 부실채권정리기구에 이른다. 체결 국가는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는 물론 러시아, 체코,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멕시코 등 남아메리카까지 전 세계를 고루 망라한다.
KAMCO는 지난 99년 11월 중국 신달자산관리공사와 해외진출을 위한 첫 MOU를 체결했다. 이어 2000년 8월 인도네시아 부실채권정리기구 IBRA와, 11월에는 중국 화융자산관리공사, 일본 예금보험공사(DICJ) 등과 부실채권 정리를 위한 MOU를 교환했다.
아시아권에 머무르던 해외진출은 지난 2001년 2월 체코 부실채권정리기구 KOB 프라하를 시작으로 유럽 등 아시아 바깥 지역까지 확대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 6월 러시아 ARCO, 7월 멕시코 IPAB, 10월 터키의 BRSA, 12월 슬로바키아의 SK,a,s 등과 숨가쁘게 MOU를 체결해 나갔다.
올 들어 사스(SARSㆍ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로 인해 해외진출이 다소 주춤했지만 7월에 불가리아 농업중앙은행에 이어 8월에 대만 중앙예금보험공사와 업무협약을 약속하는 등 KAMCO는 다시 해외사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부실채권 정리를 위한 양해각서가 KAMCO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동안 다른 아시아 국가와 동부 유럽 국가 간에는 부실채권 정리를 놓고 국가간 양해각서가 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다 보니 부실채권 정리기구 간 연대를 위해 KAMCO를 통하는 것이 점차 `필수코스`같이 되고 있다. 최근 대만이 100조원 안팎으로 추산되는 부실채권 처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KAMCO에 도움을 청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KAMCO는 국가간 MOU 체결에서 더 나아가 국제기구 컨설턴트 등록을 통해 회원국의 컨설팅 사업을 맡는 작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KAMCO는 지난 5월 아시아개발은행(ADB) 컨설턴트로 정식 등록된 데 이어 9월에는 아프리카개발은행(AfDB)가 수행하는 프로젝트에 컨설턴트로 참여할 수 있는 자격도 얻었다.
ADB가 의뢰 받은 부실채권 정리관련 컨설팅을 KAMCO에 통보하면 KAMCO가 다른 컨설턴트와 경쟁을 통해 업무를 따내게 되는 것이다. KAMCO는 이 같은 국제기구와의 연대를 통해 공신력을 등에 업는 한편 정보수집에서 유리한 위치도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AMCO의 고민은 아직 해외사업을 통해 괄목할 만한 수입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게 KAMCO측 전망이다. 일본과 대만의 부실채권 정리, 중국 공기업 구조조정 등 수익이 기대되는 사업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해외부실채권 시장진출 기반을 확충한 KAMCO는 오는 2005년까지 컨설팅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자 컨소시엄에 적극 참가, 수익모델을 만든 후 오는 2007년부터는 해외부실채권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ㆍ정리기관으로 자리잡을 계획이다.
<오철수기자 csoh@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