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칼럼/1월 14일] 로버트 루빈의 퇴장

씨티그룹 경영부실의 책임론에 시달리던 로버트 루빈 씨티그룹 고문이 지난 9일 사임을 발표했다. 루빈은 비크람 팬디트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에게 보낸 사임 서한에서 “오늘과 같은 극단적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을 알아채지 못한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며 씨티그룹 위기와 관련한 소회를 밝혔다. 그동안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며 책임론을 회피해왔던 루빈이 경영진 자문으로서 위기의 신호를 경고하지 못한 데 대한 자기 반성과 탄식으로 읽힌다. 루빈의 유감 표명은 글로벌 금융위기 책임론을 일부 인정한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떠올리게 한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지난해 10월 의회에 출석해 “금융기관이 스스로 시장 혼란을 막고 주주를 보호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잘못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린스펀이 18년 동안 FRB 의장으로 재직하면서 ‘경제대통령’으로 추앙 받은 것처럼 루빈 역시 역대 최고의 재무장관으로 칭송 받았다. 두 거물은 탈규제와 자유시장 만능주의를 설파한 주역이라는 것도 닮았다. 1995년 재무장관을 맡았던 루빈은 미국의 만성적 재정 적자를 흑자구조로 돌려놓고 저물가-고성장의 ‘골디락스(Goldilocks)’ 경제를 실현하게 했다. 게다가 그는 멕시코 페소화 위기와 아시아 외환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금융패권을 확고히 다져놓았고 시장 개방과 자유 경쟁을 골자로 한 미국식 자본주의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이식했다. 씨티그룹이 종합 금융 백화점을 지향하는 금융 제국을 완성시킨 은행ㆍ증권사 겸영금지 폐지 법안이 의회를 통과한 시기도 이 무렵이다. 루빈은 재무장관 시절 시장주의에 입각한 탈규제로 미국식 자본주의와 월가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세계 최강으로 올려놓았다. 그러나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 무렵부터 잉태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루빈은 사임 서한에서 “나이 70줄에 들어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겠다”며 “올 봄 이사회가 열리면 이사직을 사임하고 앞으로 해밀턴 프로젝트 등 공공 정책 개발에 매진하겠다”며 사실상 은퇴를 선언했다. 오는 20일 출범할 오바마 행정부는 고장난 미국 금융시스템을 고치겠다고 벼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최근 CNBC와 인터뷰에서 “금융위기에 미국 금융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며 “감독기구 구조조정을 포함한 규제 시스템 전반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금융자본주의 수정을 담당할 주역들이 루빈이 길러낸 루비니스트(Rubinistㆍ루빈 사단)라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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