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 경영=국제표준' 깨져 취약점 노출로 유럽식 힘얻어미국 기업들의 잇단 회계부정 사태는 '미국식 경영=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등식에 커다란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엄격한 규정과 촘촘한 내부 단속망이 치명적인 허점을 지니고 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미국인들이 세게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자부하던 회계원칙과 경영모델이 순식간에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현재 세계 각국이 채택하고 있는 양대 회계방식은 유럽이 세계 표준으로 적극 추진하는 '국제표준회계준칙(IAS:International Accounting Standards)'과 미국이 택하고 있는 '일반회계기준(GAAP:Generally Accepted Accounting Principles)'.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 증시에 상장하기 위해선 미국식 원칙을 준수해야 하는데다, 아시아 등 일부 국가들은 미국에 의존하는 경제 사정을 감안해 GAAP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미국식 GAAP는 곧 회계방식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인식돼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해 이래 일련의 기업 스캔들이 '미국식'의 취약점을 한꺼번에 노출시키면서 미국 회계 시스템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단일 국제 회계 표준을 둘러싸고 미국과 자존심싸움을 벌여 온 유럽은 최근의 회계 부정 사태가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회계 시스템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거센 포화를 퍼붓고 있다.
일부에선 난해한 GAAP 방식이 미 기업들에게 부실 은폐의 여지를 남겨주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일련의 분식회계 스캔들이 미국식 회계기준의 부산물이라는 시각도 대두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 미 컨설팅업체인 매킨지가 실시한 조사 결과 유럽ㆍ아프리카 기업의 75% 이상, 아시아 기업의 65%가 ISA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유럽연합(EU)은 오는 2005년부터 역내 상장기업들이 ISA를 채택토록 한다는 방침을 세웠으며, 홍콩과 싱가포르 등이 ISA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상황.
한편 이처럼 '세계 최고'로 자부하던 자국 회계기준이 경계와 질타의 대상으로 전락하자 미국은 기존 규정에 대폭 손질을 가하는 대수술에 나서고 있다.
나스닥은 상장사가 경영진에 대한 스톡옵션을 실시할 때 무조건 주총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시행할 예정이며,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분기실적 공시 마감기간을 단축하고 회계법인에 대한 규제감독기구 신설을 추진하는 등 다각도에서 메스가 가해지고 있다.
행정부도 회계부정 소탕에 전면으로 나섰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 9일 특별 담화에서 SEC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기업 회계부정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등 기업 투명성과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를 내놓았다.
하지만 세계적인 대기업들의 이름이 회계부정 기업 리스트에 대기중이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아메리카의 상처'가 쉽게 아물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신경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