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와 민변 등이 삼성그룹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의 기자회견 내용 등을 토대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삼성 수뇌부를 검찰에 고발했지만 검찰이 “로비대상 검사 명단을 공개하지 않으면 사건 배당을 할 수 없다”며 사실상 수사유보 입장을 밝혀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 “떡값 검사 안 밝히면 수사 유보”=검찰은 고발장이 접수되면 면밀하게 검토한 뒤 수사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이날 오후 로비대상 명단 공개 없이는 수사가 어렵다는 쪽으로 선회했다. 김경수 대검 홍보기획관은 “‘떡값 검사’ 명단에 대한 확인 없이는 공정한 수사 주체를 정해 사건 배당을 하기 어렵다. 명단을 우선 제출해달라”고 강조했다.
검찰이 이 같은 방침을 정한 것은 만에 하나 삼성의 로비대상 검사가 수사에 직접 참여하거나 지휘라인에 있을 경우 수사 결과에 대한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켜 검찰의 공정성도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의지 있나=이와 함께 김 변호사 측에서 제출한 고발장 내용이 기존에 논란이 돼온 것을 정리한 수준이어서 수사할 가치를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 구체적인 물증 없이는 수사가 어렵다는 점도 검찰의 ‘수사유보’ 발언 배경 중 하나다. 대검 관계자는 “고발장 내용이 기존에 제기된 의혹사항을 정리한 수준”이라고 폄하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검찰의 의지문제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민변 관계자는 “검찰이 고발장을 접수하면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번복했다. 수사의지가 없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떡값 검사를 핑계로 예민한 수사를 피해가려고 정지작업을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검찰도 이 같은 비난 여론을 의식해 “로비대상 검사 명단을 무한정 기다릴 수만은 없다”며 복선을 깔고 있다.
◇수사 쟁점은=김 변호사는 삼성이 차명계좌 등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 정ㆍ관계 로비자금으로 썼다고 주장했다. 반면 삼성 측은 그룹 차원의 비자금은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날 고발장에는 비밀금고 존재 여부, 위치 등이 상세히 적혀 있다. 수사가 진행된다면 사실 파악을 위한 압수수색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러나 로비자금의 실체가 밝혀져도 김 변호사 측의 주장을 뒷받침할 물증을 찾아내지 못하면 수사가 겉돌 수 있다. 또 삼성 측이 실제로 금품로비를 했더라도 이를 담당했던 삼성 관계자나 로비를 받은 사람이 혐의를 부인하면 사실 확인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