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대학 혁신 현장을 가다] '인문학·예술·디자인·기술' 융합교육… '제2 저커버그' 꿈 영근다

獨 프라운호퍼연구소와 손잡은 연세대 송도 글로벌융합기술원

신무환 연세대 융합기술원장 인터뷰1
송도캠퍼스 자습실5
연세대 송도캠퍼스 강의실에서 토론하는 학생들.

2011년 첫 신입생 받기 시작… 학부3년+석박사4년 학제 운영

교수·학생들 매주 모여 소통

CT 영상기술·서울버스 앱 등 벌써 12개 창업아이디어 선봬

실용기술 집중 프라운호퍼硏과 내년 2월 국내 R&D센터 설립


"한국에서도 이런 교육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지난 9월 인천 송도 연세대 국제캠퍼스의 글로벌융합기술원을 찾은 알렉산더 미하엘리스 독일 프라운호퍼 IKTS 소장은 "놀랍다(Amazing)"는 말을 연발했다. 연구와 공부가 따로국밥처럼 나뉘지 않고 '연구를 통한 교육'이 실제로 이뤄지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예정에 없던 공동연구센터 설립을 제안했다. 학생과 연구자들의 연구역량에 대한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독일 뮌헨에 본부를 둔 프라운호퍼연구소는 철저히 실용 기술에 집중해 기업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다. 기업들이 제품을 만들기 전 단계에서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이 연구소에 의뢰를 한다. 연간 1억유로의 기술 이전 수입을 가져다준 오디오 데이터 압축(MP3) 기술도, 동영상 스트리밍도 이 과정에서 나왔다. 쌍벽을 이루고 있는 막스플랑크연구소가 노벨상 수상자 34명을 배출할 정도로 전문 연구에 강점을 갖고 있다면 프라운호퍼는 독일 경제를 떠받치는 수만 개의 '히든 챔피언(강소기업)'들의 연구개발(R&D)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은 독일 드레스덴 방문 당시 프라우호퍼연구소를 한국식 창조경제가 나아가야 할 모델로 꼽기도 했다.

2011년 첫 신입생을 받기 시작해 신생기관이나 다름없는 연세대 글로벌융합기술원이 이 같은 프라우호퍼연구소의 한국 연구소로 낙점됐다. 내년 2월 프라운호퍼의 연구자까지 연세대 국제캠퍼스 내에 상주하게 되면 프라운호퍼연구소의 아시아 허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놀랍기도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예고된 결과다. 연세대 글로벌융합기술원은 종합대에 소속돼 있지만 매년 20명의 신입생을 뽑아 학부(3년), 석박사 통합과정(4년) 등 총 7년의 다른 학제로 운영된다. 이곳은 특히 정부에서 10년간 1,700억원을 지원하는 'IT 명품인재양성사업'으로 선정됐다. 이 사업은 오로지 인재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9일 찾은 연세대 국제캠퍼스에서는 책을 끼고 빠른 걸음으로 도서관으로 향하는 학생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전형적인 시험 기간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글로벌융합기술원에서 IT글로벌융합전공 2학년인 김정현군은 달랐다. 도서관이 아니라 랩실(연구실)에 있었다. 그는 이미 1학년 여름방학 때 여종석 교수의 연구실에서 랩 인턴십을 하다가 '컴퓨터 단층촬영(CT)에서 엑스레이가 지나가는 경로에 점이 있다고 가정하고 개수를 세보면 어떨까' 하고 아이디어를 내 특허 출원까지 했다. 기존 CT 영상속도를 30배 이상 늘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 김군은 '서울버스앱'을 개발한 과 선배 유주완씨처럼 창업을 하는 게 꿈이다. 김군은 "이곳에서는 1학년 때부터 제한 없이 교수님과 소통하며 연구를 시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무환 연세대 글로벌융합기술원장은 "제2의 마크 저커버그가 학교를 그만두지 않고도 창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게 글로벌융합기술원의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핵심 가치는 융합·리더십·혁신·세계화, 기업가 정신이며 지난 5년간 어느 정도 기반이 갖춰진 만큼 이제 창업을 통해 기업가 정신을 키워나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YESICT'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교수 2명이 학생들과 매주 모여 창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구체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성을 인정받은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500만∼1,000만원 규모의 창업 지원금도 지원한다. 이미 12개의 창업 아이디어가 나왔다. 신 원장은 "그동안 학생들이 교수 몰래 창업을 하거나 창업하면 학교를 그만두는 것으로 인식했다면 이제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졸업 요건도 바꿨다. 석박사 통합과정의 경우 SCI(E)급 학술지에 제1 저자로 논문을 세 편 이상 게재해야 졸업을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창업을 해서 투자금을 일정 정도 이상 내면 졸업 논문 하나를 대체할 수 있다'는 요건도 추가됐다.

이곳 학생들에게 아이디어를 내고 교수들과 토론을 하는 것은 일상적인 학습 과정이다. 3학년 최지혜 학생은 "미국 실리콘 밸리에 가면 자유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을 것 같은 분위기가 있지 않느냐"며 "교수님들이 학문에서 선배 같은 느낌으로 무슨 아이디어든 꺼내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준다"고 말했다. 커뮤니케이션과 컴퓨테이션 분야를 선택한 최씨는 "한 우물만 파면 시야가 좁아졌을 텐데 이제 큰 그림을 보게 됐다"며 "융합교육을 가장 체계적으로 받은 학생으로서 이를 다시 나누고 싶다"고 했다.

신 원장이 중시하는 교육 철학도 '소프트 스킬'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자신의 전공 분야에만 정통한 '공돌이'가 아니라 타 전공 분야와도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능력에서 융합교육이 시작된다. 학부에 입학하는 순간 예술·인문학·사회과학·디자인(Arts, Human science, Social science, Design·AHSD) 요소로 설계된 수업들을 듣게 된다. 기술과 디자인, 기술과 사회학을 결합한 리서치 센터에 소속된 연구교수진이 학생들의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있다. 이를 위해 고유의 1박 2일 심층면접을 치를 때도 인문학·사회학·심리학 분야의 교수들이 함께 출제진으로 참여한다.

연구실은 '스마트 리빙' '메디컬 시스템' 등 4개로 나뉜다. 신 원장은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처럼 최대한 방목을 하는 방법도 좋지만 학생들에게는 최소한으로 규정된 융합의 틀(바운더리)이 필요하다"며 "우리가 정의하는 융합, 우리가 생각하는 융합을 먼저 제시하면 학생들이 이를 창조적으로 변용해나갈 힘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최대한 전공을 열어둔 채 입학한 뒤 1학년 때는 '개별연구지도', 2학년 때는 '랩 인턴십', 3학년 때는 정한 연구실(랩) 안에 소속돼 자유롭게 통섭연구를 한다. 학부생의 95% 이상이 융기원의 석박사 과정으로 진학했다. 신 원장은 "이 학생들이 1세대 융합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된다"며 "융합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연구·창업으로 세계로 뻗어나가면 그들을 통해 다시 해외 유수의 인재들이 융기원을 찾으면서 국제화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송도=정혜진기자 made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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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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