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불편한 사람을 부축하면 걸음걸이가 어떻게 될까요?”(강사)
“천천히 걸어가게돼요.”(학생들)
“그렇죠. 장애인과 함께 걸으면 보폭을 맞춰서 천천히 걸을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면 주변을 둘러보게 되고 여유가 생기면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심이 생기겠죠.”(강사)
지난 7일 늦은 7시, 은평구 하나고등학교에서 시작한 정창권(사진) 고려대 교수의 고인돌 강좌 ‘마이너리티 리포트 조선’에는 이 학교 인문학 심화과정인 ‘인문학교’ 학생들이 늦은 저녁 세미나실에 모였다. 정 교수는 신체적 장애에도 불과하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던 조선시대의 주요 인물과 장애인을 위해 마련한 복지제도를 소개하면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가치를 학생들에게 일깨웠다.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과 본지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기획· 운영하고 KT가 후원하는 청소년과 시민들을 위한 고전인문 아카데미로 올해 3회째다. 이날 강의는 어린이도서관에서 지역 학교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정 교수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던 조선시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대해 설명해 나갔다. “조선시대에는 장애란 고치면 낫는 병이라고 생각하다보니 몸이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못할 일은 없다는 게 사회적 인식이었어요. 시각 장애인은 안질, 척추장애인은 융질 등 질환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죠. 특히 거동할 수 있는 경증 장애인의 경우 교육을 거쳐 일을 하면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는 데 중요한 포인트가 있어요. 인간의 사회적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을 터 준 것이죠. 장애인을 특별한 시설에서 그들만 거주하도록 하면서 지원금을 주고 마는 요즘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지요. 조선시대에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가 남달랐던 것입니다. 특히 시각장애를 앓았던 세종의 경우 세계 최초의 장애인 단체인 명통시를 설립하는 등 제도로서 그들의 자립을 도왔어요.”
정 교수는 윤지완(숙종대 우의정), 이원익(선조~인조대 우의정 영의정), 체제공(영정조대 재상), 허조(세종대 좌의정) 등 신체적인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던 조선시대 주요 정승들과 그들을 등용했던 왕의 정치철학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영정조대에 대사성 대제학을 지냈던 이덕수는 청각장애인이었지만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했어요 ‘귀가 들리지 않는데 어찌 사신으로 가겠습니까’라며 반대하는 신하들에게 영조는 ‘그대들도 중국에 가면 귀머거리와 같다’며 반대의견을 일축하기도 했지요. 이덕수는 필담으로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이날 참석한 학생들은 학교는 물론 외부에서도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조선시대 장애인의 역사에 대한 강의에 주말 늦은 시간에도 한 자리에 모여 귀를 기울이며 공동체적 삶에 대한 의미를 되새겼다.
한편, 올해 3회째인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21곳과 서울시 중고등학교 30여 곳에서 12월까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세부 프로그램은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포털 에버러닝(everlearning.sen.go.kr)을 참고하면 된다. 강좌는 무료이며 신청은 해당 도서관으로 문의하면 된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