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조업 매출액이 지난해 사상 처음 감소했다고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했다. 1891년 통계를 시작한 후 53년 만에 처음으로 보인 마이너스 성장세다.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의 하락, 원·달러 환율의 하락, 세계적인 경기침체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고속성장한 중국의 제조업이 전반적으로 우리를 따라잡았기 때문이고 이로 인해 앞으로 적지 않은 충격이 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선진국으로 올라서고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조업의 경쟁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정동 서울대 공과대 산업공학과 교수로부터 우리 제조업의 위기, 혁신과 관련된 책을 추천 받았다. 한국 산업의 미래를 위해 서울 공대 26명의 석학이 던지는 제언을 담은 '축적의 시간'이다. 올해 9월 출간돼 경제계로부터 크게 주목 받았다. 이 교수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국내파로 '축적의 시간' 프로젝트를 총괄하기도 했다.
프로젝트팀은 지난 2013년 우리 산업의 당면 문제를 진단하기 위해 전문 의견을 줄 수 있는 26명의 서울공대 교수를 멘토로 선정했다. 이들 멘토들에게 여섯 가지 공통 질문을 던져 인터뷰를 진행하고 공통된 키워드를 추출하는 방향으로 저술됐다. 여섯 가지 질문은 △한국 산업계가 처한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는가 △한국의 산업계가 돌파해야 할 관문이 무엇인가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산학협력은 어떻게 돼야 하나 △대학(공대)의 역할이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틀과 국가정책의 틀이 바뀌어야 할 부분이 있는가다.
석학들은 중국은 산업선진국들이 100년에 걸쳐 쌓은 역량을 10년 만에 10배나 많은 사례를 접하며 특정 기관이나 기업에 경험을 집중시키는 전략으로 쌓아왔다고 주장한다. 축적의 시간적 한계를 공간의 힘으로 극복한 전략이 결실을 거둔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는 앞으로 중국으로부터 설계를 받아와 생산해 중국에 납품하거나 최악의 경우 생산마저 경쟁력을 못 갖출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우리에게는 축적할 시간도 중국처럼 거대한 내수시장도 없다. 석학들은 제3의 길을 제시한다. 산업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의 틀을 바꿔 국가적인 차원에서 총력으로 축적해가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것. 우리 사회 전반의 인센티브 체계, 문화를 바꿔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주체가 축적을 지향하도록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열린 자세'를 강조한다. 새롭고 도전적인 개념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실패를 용인하며, 이러한 경험을 축적하고자 노력하는 조직과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인센티브 체계 전반을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