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4일 별도의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를 럭셔리 브랜드로 재탄생시킨 것은 진정한 '글로벌 톱' 자리를 굳히기 위한 '리셔플(전면개조)'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고급차 시장에서 양산형 차 '현대'와는 다른 인간 중심의 프리미엄 자동차를 내놓아 또 한 번의 도약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이를 통해 단순히 '많이 팔리는 차'가 아니라 전 세계인이 '찾고 싶은 차'를 만들어 렉서스를 능가하는 최고급 자동차 메이커로 올라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제네시스 브랜드 왜 론칭하나=현대차가 제네시스를 별도 브랜드로 출시한 것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고급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현대차는 '가격 대비 성능 좋은 차'를 무기로 지난해 글로벌 판매 800만대를 돌파하며 세계 5위 업체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세계 3위권 업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대중차가 아닌 고급차라는 질적 성장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국내에서 BMW·벤츠·아우디 등 고급차 판매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현대차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전 세계 고급차의 연평균 판매 증가율은 10.5%로 대중차 시장 증가율(6.0%)을 뛰어넘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BMW·벤츠·아우디 등 고급차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처럼 글로벌 시장도 비슷한 상황"이라며 "자동차 보급률이 일정 수준을 넘어선 상황에서는 대중차보다 고급차 판매가 더욱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업체들은 이미 별도의 고급 브랜드를 갖고 있다. 도요타는 렉서스, 혼다는 어큐라, 닛산은 인피니티, GM은 캐딜락, 포드는 링컨, 피아트는 알파로메오를 운영한다. 최근에는 고급 브랜드가 럭셔리 브랜드까지 별도로 운영한다. 벤츠는 마이바흐를 최고급 세단 S클래스의 상위 모델로 추가했고 BMW는 롤스로이스, 폭스바겐그룹은 벤틀리를 갖고 있다.
현대차는 2004년 1세대 제네시스 개발시점부터 독자 고급 브랜드 출시를 기획했다.
하지만 제네시스 출시 시점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자 관련 계획을 연기했다. 대신 10년 이상의 기간에 소재·설계·시험·파워트레인 역량을 축적해 이번에 제네시스를 고급 브랜드로 출시했다. 현대차의 제네시스가 고급차 시장에서 선전하는 것도 독자 브랜드 출시의 원동력이 됐다. 미국자동차딜러협회(NADA)에 따르면 제네시스는 올해 미국 미드럭셔리 차급에서 9월까지 총 1만9,146대가 팔리며 해당 시장 3위에 올랐다. 경쟁 모델인 아우디 A6(1만7,072대), 렉서스 GS(1만6,233대), 캐딜락 XTS(1만6,023대)을 앞서는 규모다. 제네시스는 수익성 면에서도 현대차에 꼭 필요하다. 고급차는 대중차보다 수익이 좋다. BMW는 올 3·4분기 글로벌 시장에서 54만5,062대를 판매해 1조9,506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현대차는 같은 기간 2배 더 많은 112만대를 판매했지만 영업익은 BMW보다 적은 1조5,039억원이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문을 열었고 정몽구 회장이 양적 성장을 통해 글로벌 브랜드로 현대차를 키워냈다"며 "3대인 정의선 부회장은 제네시스로 현대차를 한 단계 더 높이기 위한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2020년까지 6종 라인업 완성…인간 중심의 차 만든다=현대차는 오는 2020년까지 제네시스로 6종의 신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제네시스의 시작은 다음달 출시될 신형 에쿠스로 제네시스 'EQ900'으로 출시된다. 제네시스는 영어알파벳 'G'에 두 자리 숫자가 더해진다. 다만 EQ900은 에쿠스의 상징성 때문에 세 자리 숫자를 쓰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G90으로 판매된다. 2017년에는 현재 '제네시스'로 판매 중인 세단이 'G80'으로 이름이 바꿔 출시된다. 향후 'G70' 및 대형 럭셔리 SUV, 고급 스포츠형 쿠페, 친환경차도 선보일 예정이다.
제네시스 차량은 '인간 중심의 진보'라는 콘셉트에 맞춰 사람을 향한 혁신기술, 편안하고 역동적인 주행성능, 동적 우아함을 지닌 디자인, 간결하고 편리한 고객경험 등 '4대 핵심 속성'으로 차별화에 나선다. 모두 후륜구동으로 출시된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디자인을 전담하는 '프레스티지디자인실'을 신설하고 전담조직인 G포스를 만들었다. 또 제네시스 디자인을 위해 명차 벤틀리와 람보르기니를 디자인했던 세계적 디자이너 루크 동커볼케를 영입했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차는 또 하나의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한다"면서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내실을 다져 세계 고급차 시장에서의 입지를 견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또 "제네시스에 집중하면서도 현대차와 시너지를 낼릴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계속 발전시켜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도요타가 렉서스를 미국 시장에 출시한 후 50억달러(약 5조원)를 투입해 10년 만에야 수익을 낸 바 있다"며 "기존의 현대차 DNA와 다른 차를 만들어 판매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마케팅 비용 등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