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는 가부장제로 여성의 권익이 바닥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16세기까지 우리나라는 상당히 개방적인 사회로 여권이 존중되는 전통이 이어져왔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사림이 정계에 뛰어들면서 청렴결백한 인식을 정착시키는 긍정적 효과도 있었지만 사회적인 불평등을 조장하는 부작용도 있었답니다. 이후 부부관계에서도 남녀가 주종관계로 바뀌게 되었어요.”
지난 9일 강남도서관에서 열린 고인돌 강좌 ‘인생을 3배로 넓히는 조선의 이야기들’을 맡은 정창권(사진) 고려대 교수는 ‘남녀가 평등했다. 조선의 부부사랑법’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여성사, 장애인사 등 미시사를 중심으로 연구해 온 정 교수는 이날 사료에 남아있는 기록으로 조선시대 부부 관계에 대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강의를 이어나갔다. 이날 강의실에는 6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이황, 정약용, 박지원 등 조선을 대표하는 선비들의 아내 사랑법을 을 듣고 자신의 삶에 대비해 보는 기회를 얻었다.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과 본지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기획·운영하고 KT가 후원하는 청소년과 시민들을 위한 고전인문 아카데미로 올해 3회째다.
정 교수는 처가살이 풍습과 남녀 동등한 재산 분배 그리고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사대부집안 여성의 역할 등을 설명했다. “조선시대에는 한 집안의 식솔이 많게는 120명 정도였어요. 요즘으로 치면 중소기업 규모입니다. 이들의 총 감독이 바로 안주인이었어요. 당시에는 집안을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는 인식이 있어서 안주인 즉, 정경부인의 책임이 막중했어요. 그만큼 권한과 카리스마를 겸비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군자로 불리는 이황의 부부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퇴계는 두 번의 결혼을 했는데, 재혼 상대가 조선중기의 문신이었던 권질의 딸이었어요. 지적장애를 앓고 있던 안동 권씨와의 재혼은 권질의 간곡한 부탁에 따른 것이기도 했지만, 결혼 후 퇴계는 아내의 거듭되는 실수를 감싸고 아무렇지 않게 태연히 지나갔어요. 배운 바를 그대로 실천하는 군자라 불릴 만 한 인품이었지요. 게다가 낮에는 의관을 차리고 제자를 가르쳤지만 밤에는 부인에게 토끼처럼 굴어 ‘낮 퇴계 밤 토끼’라 불릴 정도로 다정다감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답니다.”
정 교수는 가부장제 이전의 선진적인 조선시대의 부부상을 소개하면서 지극히 친한 사이지만 그럴수록 서로 예를 갖추어야 할 관계가 바로 부부라는 점을 강조했다. “1박2일 여행을 떠나려고 해도 일주일 이상 준비를 하는데, 하물며 50~60년 여정을 준비하고 함께 갈 사람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에 대한 고민은 굳이 묻지 않아도 얼마나 신중해야 하겠습니까. 요즈음은 결혼식에서 주례사를 빼놓고는 부부가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사람은 드문 게 현실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얼마나 섬세하고 다정다감하게 아내를 생각했는지를 되새기는 시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총 5회로 구성된 이번 강좌는 1강. 남녀가 평등했다. 조선의 부부사랑법, 2강. 물 도사 수선이 말하는 조선생활사, 3강. 야성의 화가 최북이 말하는 조선문화사, 4강. 척추장애인 재상 허조가 말하는 조선장애인사. 5강. 저문이야기꾼 전기수가 말하는 조선 스토리문화사 등으로 이어진다.
한편, 올해 3회째인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21곳과 서울시 중고등학교 30여 곳에서 12월까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세부 프로그램은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포털 에버러닝(everlearning.sen.go.kr)을 참고하면 된다. 강좌는 무료이며 신청은 해당 도서관으로 문의하면 된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