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도건설의 최대 쟁점은 경복궁의 주산(主山)이었다. 북악산과 인왕산이 대립했다. 인왕산이 부각된 것은 서울의 지형때문. 풍수지리상 입지는 좌청룡우백호인데 이중 좌청룡이 우선이다. 즉 국왕의 입장에서 왼쪽 산이 높아야 한다. 만약 북악산이 주산이면 동생(낙산·126m)이 형(인왕산·339m)을 이기는 형국이다. 인왕산일 때는 좌청룡 북악산(342m)이 우백호 남산(243m)보다 높다. 하지만 군왕은 남면(南面)이라는 논리에 밀린다. 최종 북악산 주산론은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의 주장이다. 그런데 정말 조선왕조에는 적장자 계승이 드물었다. 아이러니하게 정도전도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에게 목숨을 잃는다. 사진은 낙산 정상에서 북쪽 한양도성 낙산구간 성곽을 바라본 전경이다. 북악산 자락과 더 멀리 북한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글·사진=최수문기자 chs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