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생활 접고 기업가 변신… 과감히 확장하다 실패 경험
젬백스 인수가 터닝포인트
췌장암 치료백신 '리아백스' 개발로 본격 성장발판 마련
삼성제약·케이에스씨비 등 왕성한 M&A… 회사 규모 UP
새로운 치료제 개발 힘쓸 것
카엘이라는 반도체 필터 회사를 운영하던 김상재(50·사진) 젬백스앤카엘 대표는 지난 2008년 10월 중요한 인수·합병(M&A)거래에 나서게 된다. 덴마크의 생명공학회사 파맥이 소유한 노르웨이 바이오 기업 젬백스를 1,000만달러(약 115억원)에 인수한 것이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젬백스가 싼값에 매물로 나와 비교적 수월하게 인수할 수 있었다. 6년 후 이 거래는 김 대표의 운명을 바꿔놓는다. 젬백스에서 수년간 공들여 개발한 췌장암 치료 백신인 '리아백스'가 지난해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신약 허가를 받은 것이다. 리아백스는 췌장암 환자의 면역력을 강화시켜 부작용을 최소화해 암세포를 파괴하고 암환자의 생존기간을 늘려주는 신개념 항암 치료제다. 올 4월 시판 허가를 받은 후 최근 신촌 세브란스병원 등에서 처방을 시작했다. 김 대표가 의사라는 안정적 직업을 포기하고 과감히 바이오 사업에 뛰어들어 일궈낸 결과였다.
"젊었을 때부터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기회만 되면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자는 벤처 정신이 강했습니다. 의사 생활을 접고 줄기세포 연구소장을 지낸 뒤 반도체 사업과 바이오 사업에 뛰어든 것도 도전정신이 남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신약개발에 투자할 예정입니다. "
김 대표가 처음부터 바이오 신약개발을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의사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중학교 영어교사였던 아버지와 대학교 체육교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난 그는 집안 환경 덕택에 자연스레 공부에 매진했고 1985년 한양대 의대에 입학했다. 교수가 되기 위해 한양대 대학원에서 세포 생리학을 전공했지만 여의치 않아 1992년 미국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척추 신경의학 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서울 압구정동에 어린이 척추측만증(척추가 정면에서 봤을 때 옆으로 휜 것) 전문병원을 차렸다. 당시 책상 앞에 오랫동안 앉아 있는 어린이들의 척추질환 문제가 큰 이슈가 되면서 학부모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고 김 대표는 이때 제법 큰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다가 줄기세포에서 신경세포를 만들어냈다는 선배를 만난 후 과감히 병원을 정리하고 2005년 줄기세포를 추출해 보관하는 '한국줄기세포은행'을 차렸다. 평탄한 길을 걷던 그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리스크를 감수하고 도전을 하게 된 것이다. 줄기세포 배양을 위해 공기필터를 찾다가 반도체 필터를 만드는 코스닥 상장사 카엘도 인수했다. 하지만 기업인으로서 그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일반 혈액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방법을 찾아내 회사가 커지는 듯싶더니 황우석 박사 파동에 휩쓸려 줄기세포 관련 산업 전체가 가라앉게 됐다. 재기를 모색하던 그는 고민 끝에 오리지널 바이오 신약개발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미국 유학 당시 만났던 지인들이 복제약 개발은 가격 경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오리지널 신약 업체를 차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곧바로 매력적인 기업이 시장에 있는지 물색하기 시작했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게 젬백스였다. 영국 왕립암협회가 연구비를 지원할 정도로 기술력을 입증받은 회사였다. 그는 "2003년 어머니가 간암 판정을 받은 후 치료를 위해 항암 백신과 치료제를 찾아다녔는데 젬백스가 오리지널 항암치료 백신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젬백스를 인수한 2008년 그해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지금도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젬백스를 선물로 주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젬백스 인수 후에도 김 대표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이후에도 국내 상장사 세개(케이에스씨비·젬백스테크놀러지·삼성제약)를 인수한 것. 카엘 인수를 포함하면 거의 2년에 한 번꼴로 국내 상장사 한 개씩을 사들인 셈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2014년 삼성제약 지분 16.1%을 120억원에 매입한 것이다. 삼성제약 인수는 젬백스에 호재로 작용했다.
중국 유통업체들이 젬백스와 거래하기 위해 먼저 손을 뻗은 것이다. 삼성제약은 삼성그룹과 관계가 없는 회사지만 중국 업체들은 중국 내에서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인지도가 높은 만큼 삼성 이름을 달고 젬백스와 삼성제약의 제품을 팔면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실제로 최근 젬백스는 중국 제약 유통회사인 구주통의약그룹과 계약을 맺고 중국 판로를 확보한 바 있다.
그는 "M&A를 통해 인수한 회사에서 발생한 수익을 지속적으로 신약개발에 투자한다"며 "M&A를 한 후 지금까지 인수한 회사를 대상으로 감원한 적이 없고 노사 분쟁도 일어나지 않아 지금도 한계 회사들이 인수해달라고 요청을 해오기도 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요즘 리아백스가 전립선 치료에도 효과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그는 "리아백스를 영국 의사들이 써보더니 전립선 치료에 효능이 있음을 알려줬다"며 "그래서 본격적으로 임상을 실시했고 그렇게 해서 나온 특허가 80개가 넘는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에 전립선 환자가 1억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리아백스는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중국 판로 개척을 위해 최근 젬백스는 구주통과 함께 리아백스가 전립선 치료에 확대 적용될 수 있도록 연구개발(R&D)과 마케팅을 함께 진행하기로 협의했다. 비아그라가 심장약 치료제에서 발기부전 약으로 성공했던 것처럼 리아백스도 췌장암 치료 백신보다는 전립선 치료제로 널리 알려질 것으로 김 대표는 전망하고 있다. 그는 "2008년 이후 리아백스 개발에 약 1,000억원을 투자했는데 중국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판매되면 1~2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바이오 산업이 국내 무역 역조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신념으로 앞으로 새로운 치료제 개발에도 힘쓸 예정이다. 우리나라가 자동차와 스마트폰 등 제조업으로 상당한 돈을 벌어들이기는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외국 제약회사에 약값을 지불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는 "최근 해외업체와 7조원대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은 한미약품과 같은 업체 두세 개만 더 생기면 무역 역조 해소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며 "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못하면 썩어 죽는 것과 같다'는 경영철학에 따라 해외로 수출될 수 있는 신약개발에 계속해서 투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경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라는 문구가 있는데 항상 마음속에 '젬백스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문구를 새기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평생 질병과 권력으로부터 고통 받는다고 하는데 우리 약을 통해 암 환자나 전립선 환자들이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질병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또 다른 약물 개발을 위해 젬백스는 지금보다 더 노력할 것입니다. "
/판교=한동훈기자 hooni@sed.co.kr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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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개발 재원 마련하자" 공항운영·유통업 진출하는 젬백스 한동훈 기자 hooni@s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