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삼성-롯데 빅딜을 보며


외환 위기 직후인 지난 1998년 말. 구조조정 작업을 총괄, 집도했던 오호근(작고) 전 기업구조조정위원장은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정부 주도로 이뤄지던 대기업 간의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처음 들었을 때 황당하더군요. (중략) 인수자는 부실 기업을 넘겨받으면서 정부 지원을 받아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려는 의도가 있었고 넘겨주는 그룹은 골칫거리 계열사를 현금 투입 없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품은 것 같았어요. 다분히 정치적이고 자기 이해에 의한 의지라고 할까요. 정부도 구조조정을 보여주고 싶었을 테고. 전부 동상이몽이었지만…."

그가 4대 그룹 계열의 빅딜에 대해 평가한 이 말은 대기업들의 당시 구조조정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일부 기업들은 속이 다 시원했지만 LG 총수들처럼 '통곡'을 하는 곳들도 적지 않았다. 분위기가 이러니 노조가 가만 있을 리 없었다. 빅딜 대상 기업의 노조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머리띠를 하고 길거리로 나왔다.

그로부터 17년여가 흐른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 당국자들의 일방적 발언으로 시장을 혼탁하게 하고 있는 지금의 구조조정 상황 역시 기업들의 반발이 폭발 직전이다.

특히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거지는 노사 문제는 여전히 결정적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에서 한화로 넘어간 한화종합화학(옛 삼성종합화학)이 대표적인 사례다. 매각에 발맞춰 1월 설립된 이 회사 노조는 사실상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최근 직장폐쇄 사태까지 초래했다. 이 회사 직원들은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위로금 명목으로 평균 5,500만원의 위로금을 받았지만 연 600%의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즉각 반영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무리한 주장을 펼쳤다. 노사는 4일 가까스로 임단협을 타결해 파국은 면했으나 이 과정에서 일부 고객사가 이탈하는 등 피해가 적지 않았다.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끌어 올려도 모자랄 판에 소모적인 다툼을 벌이느라 시간만 허비한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삼성과 롯데의 화학사업 빅딜은 재계 인수합병(M&A)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만하다. 롯데그룹으로 옮겨가게 된 삼성정밀화학 노조는 매각이 발표된 지 나흘 만인 3일 사측과 공동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빅딜 지지'를 선언했다. 파업의 깃발을 들어 올리는 대신 '함께 가자'는 구호를 외친 것이다. 롯데케미칼은 8일 이에 화답해 "적극적인 지지와 환영에 감사를 표한다"며 직원들의 고용보장을 약속했다.

글로벌 톱10 종합화학회사라는 비전도 제시했다. 그동안 국민들은 점령군 행세를 하며 구조조정에 나서는 인수기업과 이에 반발하는 피인수기업 사이의 극한 대립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지켜봐왔다. 양사의 신선한 행보가 기업 M&A의 교범이 되길 기대한다.

/산업부=서일범기자 squiz@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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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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