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차라는 것
건강이 인생의 목표처럼 설정되거나, 평생 해야 할 숙제로 여기는 듯한 분위기.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80세를 넘는 평균수명인데도, 건강수명과 경제수명 그리고 이를 종합한 행복수명을 설정하는 이상한 문명사회.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죠. 그렇다고 건강 관련 대책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지나치거나 혹은 치우쳐서 문제라는데 누구나 동의합니다. 이 어색한 상황이 왜 일어나는지도 대개는 알고 있죠.
차와 건강이라는 이야기도, 건강에 좋은 차를 설명하면 쉽게 정리될지 모릅니다. 결과적으로 좋은 차를 선택해 마시면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쉬운 방법이죠. 현실에서 건강과 관련한 진술은 대개 그렇죠. 어디에 무엇이 좋다는 방식입니다. 차도 그렇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건익건병익병(健益健病益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익부빈익빈이라는 사회적 진술을 차용한 것이죠. 건강한 몸은 더욱 몸에 좋은 것을 찾게 되고, 병이 있는 몸은 더욱 몸에 좋지 않는 것을 찾는다는 건데요. 이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극기복례(克己復禮)가 필요하겠죠. 낡은 습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습관을 다시 회복하는 일이죠. 건강문화와 관련해서 ‘예(禮)’를 찾아가는 일, 건강한 시대문화를 회복하는 일, 이것이 중요하고 여기에 차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몸과 관련한 비움과 채움, 사회적 예에서 버림과 지킴, 모두 차가 하는 차다운 역할이었고, 차를 즐기는 사람들의 사회적 역할이었습니다.
차는 사람이 이용하는 물건이기에 사람 몸이 차를 바라보는 기준이 됩니다. 우리 몸을 기준으로 차를 이야기할 수 있고 이와 관련한 오래된 경험이 이론으로 정리될 수 있다면, 어떤 차를 어떻게 마실 것인지에 대한 매뉴얼은 얼마든지 가능하죠. 그래야 시대문화로 공유할 수 있을 거고요. 차와 관련한 객관적인 기준에는 나름의 육하원칙이 함께 합니다. ‘왜’에 대한 부분은 신농씨와 윈난 소수민족 등 오래된 이야기로 차의 필요성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차는 음식 화해제와 소화제 그리고 해독제 역할을 했으며, 근본으로는 우리 몸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려는 복원력에 있다는 것이죠. ‘언제’ 그리고 ‘어디서’는 상황에 따른 디테일이 필요하고, 남는 것은 ‘누가’입니다. 그렇게 ‘나(who)’는 ‘차(what)’와 만납니다. 좋은 차에는 나름의 조건이 있을 것이고, 좋은 차가 되고 안 되고 하는 문제는 ‘나’에게 달린 셈이죠. 내 몸에 얼마나 이롭게 쓰느냐의 문제로 남는 것이죠.
#우리 몸에 이롭다는 것
좋은 차에 대한 조건은 육하원칙 가운데 ‘어떤(what)’에 해당할 것이고, 이는 곧 차의 이력(履歷)이기도 합니다. 내가 마시는 차에도 이력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디서 태어났고, 언제 만들었고, 어떻게 만들었으며, 어떻게 보관했는지, 이에 대한 이력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이력을 갖춘 차를 ‘색과 향과 맛 그리고 내 몸 속에서 작용하는 성질’에 따라 차를 선택합니다. 내 안으로 들어와 작용하는 차의 성질을 두고 오행이라는 운동성으로 정리했었죠.
다섯 가지 운동성은 내 몸 속에도 있습니다. 내 기운도 내려갈 것은 내려가고, 풀어질 것은 풀어져야 하겠죠. 사람으로서 제 역할을 하는데 올라갈 것이 올라가야 힘이 나고, 그렇게 올라가는데 어떤 때는 응축했다가 어떤 때는 팽창하는 기운의 장단도 필요하겠죠. 오행으로 나누었던 다섯 가지 운동성이 역시 우리 몸 안에서도 필요하고, 또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다섯 가지 흐름이 내 안에서 유지되고 있다면 지극히 건강한 상태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운동성이 뜻대로 실현되지 않는 거죠.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여러 원인으로 다섯 가지 흐름은 편향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편향은 시간이 지나면서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나만의 체질을 형성하겠죠.
차가 우리 몸에 이롭다고 한 것은, 다섯 갈래로 나눈 차의 기본 역할이 본래 내 몸에 있어야 할 바탕과도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차가 지닌 다섯 가지의 운동성은 우리 몸 안에서 진행되는 기본 운동성과 서로 대응을 합니다. 특히 음식과 관련해 우리 몸 스스로 조정할 수 없을 때, 차는 우리 몸의 기본 운동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죠. 이것이 차다운 차의 역할이고, 좋은 차에 대한 정리 기준입니다.
우리 몸에는 차가 하는 다섯 갈래의 작용 모두가 필요합니다. 녹차와 홍차, 황차와 백차 그리고 흑차로 나누었던 다섯 갈래 차는 우리 몸을 운영하는데 모두 필요합니다. 각각의 차는 음식 문화와 서로 짝을 이루고, 내 몸 속으로 음식물이 들어와 소화되고 에너지로 변환되는 과정에서도 역할을 하게 되죠. 따라서 기본적인 차의 선택은 일상적으로 내가 취하고 있는 음식과 내 몸의 상태를 기준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윈난 바이족의 삼도차(三道茶)처럼, 사람 몸의 상태 혹은 몸을 둘러싼 환경을 기준으로 차를 적절하게 마실 수 있는 거죠.
#현대인에게 필요한 차의 순서
어떤 차가 필요한 지는 현실에서 느끼는 우리 몸 상태가 결정합니다. 여기서 현대인에게 필요한 차의 우선 순위가 있게 되죠. 우리 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얼굴이라고 합니다. 우리 몸은 우리의 삶과 연결되고, 우리의 삶은 사회적 생활패턴과 직결되기 마련이죠. 결국 몸의 건강은 사회적 건강으로 연결됩니다. 그렇게 몸과 사회가 모두 건강한 상태가 되도록 함께 풀어가야 하겠죠. 이것이 차 생활을 매개로 시대문화를 이야기하는 까닭입니다.
누군가 저녁이 있는 삶을 이야기했을 때 심정적 동의가 대단했습니다. 사회적 거래 방식이 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시간마저도 여전히 긴장 모드를 유지하기 때문이죠. 우리 신체는 늘 피로할 수밖에 없고, 쉬어도 긴장은 풀리지 않죠. 이를 달래는 휴식도 자극적인 방법에 의존하고요. 우리 몸을 운영하는 다른 패턴들도 비슷하죠. 내 몸에 익숙하지 않은 소재와 복잡한 음식들, 때를 잃어버린 식사 등은 우리 몸을 늘 긴장시키죠. 노동 패턴은 한편으로 치우치고, 갈수록 고기능화되면서 머리로 에너지가 집중되고 있고요. 이렇게 몸의 움직임은 매일 고정된 패턴을 반복하고, 몸 속은 매일 새로운 실험으로 고생하죠. 그러면서 우리 몸은 변해가겠죠.
자연으로 있는 기후도 정상에서 자주 벗어납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우리 몸을 풀어주던 공기와 바람과 습기가 달라지고 있죠. 냉 온방 기구 덕분에 세계인들의 생활 온도는 비슷해졌고요. 중동지역 바이러스도 한국에서 얼마든지 맹위를 떨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넓어지는데 우리 몸의 적응 범위는 오히려 좁아지고 있는 거죠. 몸의 시스템이 그렇게 달라진 것이죠.
현대인에게 필요한 차는 몸 상태에서 출발한다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배는 차고, 머리는 뜨겁고, 가슴은 답답한, 이 비정상적인 상황이 정상처럼 자리하는 상태가 출발점입니다. 이 상태는 대사와 순환, 면역과 신경 등 자율적으로 조절 작동할 수 있는 여러 시스템을 무력하게 만들겠죠. 차갑게 변해가는 세태도 그렇고요.
여기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따뜻함입니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차 가운데서도 우리 몸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차가 먼저 필요하겠죠. 팔팔 끓어 뜨거운 차가 아닌, 우리 몸에 온기를 불어 넣어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성질의 차가 필요할 것입니다. 최소한 머리나 사지로 퍼져있는 열기를 아래로 거두어들일 수 있는 차의 작용이 필요한 거죠.
몸을 따뜻하게 하는 차는 대개 발효차입니다. 차가 지닌 냉한 성질을 따뜻한 성질로 전환시키는 공정이 발효공정이기도 합니다. 특히 우리의 된장과 김치처럼, 미생물을 매개로 발효를 지속시키는 후(後)발효차가 몸을 따뜻하게 하는데 적절합니다. 흑차는 그의 성질이 내림에 있었습니다. 머리와 사지로 흩어져 있는 열기를 다시 아랫배로 수렴시키는 작용을 하게 되죠. 물론 몸이 차의 작용을 받아 들이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할 거고요.
온기와 온정은 서로 통할 것입니다. 따뜻한 몸은 마음으로도 전해질 것입니다. 현대인의 차상에 먼저 내림의 차를 추천합니다. 그에게도 이력이 있다고 했으니, 이력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내림의 차를 알아보며 차를 준비해보려고 합니다. 다음에는 내림의 차인 흑차(黑茶) 그리고 흑차를 대표하는 보이차의 세계를 만나보겠습니다. /서해진 한국차문화협동조합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