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은 21일 열린 2015 프로야구 삼성과의 홈 경기에서 1-6점으로 크게 패하며 홈 팬들을 실망시켰다." 이렇게 시작하는 기사를 로봇이 썼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처음에는 '두산이 홈 팬을 실망하게 했는지 로봇은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궁금증을 해결할 사이도 없이 바로 이어진 느낌은 당혹감이었다. 로봇이 이렇게 거의 흠 없이 기사를 쓴다면 기자는 모두 짐 싸서 집에 가야 하는 것 아닌가. 로봇·컴퓨터·인공지능 같은 것들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안다. 그래도 그렇지 20년 넘게 하면서도 항상 어렵게만 느껴지는 기사 쓰기를 고작 사람이 만든 기계가 그것도 전광석화처럼 해낸다는 것을 믿기 힘들었다.
상황을 파악해보니 혼자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몰랐나 보다. 운전도 자율주행차라는 이름으로 컴퓨터에 넘어가기 시작했다. 구글이 만든 자율주행차는 벌써 160만㎞의 시험주행 기록을 갖고 있다. 구글의 자율주행차가 수십만㎞를 주행했을 때 사고는 단 2차례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한 번은 사람이 운전하다가 다른 차를 받았고 다른 한 번은 빨간불에 멈춰 있을 때 뒤에 있는 다른 차에 받힌 사고였다.
'로봇 시대, 인간의 일'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앞으로 사람이 차를 운전하면 불법이 될 것"이라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을 인용하며 자율주행차가 이미 현실이 되고 있음을 얘기했다. 원천적으로 사고를 낼 수 없도록 설계된 자율주행차가 일반화하면 음주운전이나 졸음운전 등 사고 가능성을 숙명적으로 안고 있는 사람에게 운전대를 넘기지는 않으리라 봤다.
운전처럼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은 기계에 맡기는 것도 방법이다. 사람은 그 시간에 더 지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다. 거기까지는 용납할 수 있겠는데 지식 기반 산업으로 볼 수 있는 기사 작성까지 기계가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심하지 않나. 아니다. 번역, 항공기 조종, 주식 투자 종목 선정 등 고도의 지적 활동이 필요한 많은 일이 이미 기계의 시야에 들어왔다.
영국 옥스퍼드대 조사를 보면 미국 일자리의 47%가 컴퓨터 관련 기술로 대체될 수 있다. 대체 가능성이 높은 직업 1위는 99%의 확률로 텔레마케터가 차지했다. 일자리의 절반을 기계가 접수한다면 이제껏 그 일을 해오던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은 그래도 경쟁에서 도태되면 업무 능력을 올리기 위한 재교육을 받거나 새로운 기술을 익히면 된다. 앞으로는 불가능해진다. 재교육을 받아도 기계보다는 못할 테고 새로 익힌 기술도 기계가 더 잘할 테니 말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농사를 짓던 사람은 대거 제조업으로 뛰어들었다. 기계가 점차 생산력을 높여가자 사람은 서비스업으로 옮겨갔다. 기계가 서비스업까지 장악하면 사람은 어느 산업으로 쫓겨가야 할까. 현재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기계의 침략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있다. 인스타그램은 직원 수가 10여명에 불과한 온라인 사진 공유 서비스 업체로 2012년 페이스북에 10억달러가 넘는 액수에 팔렸다. 그로부터 몇 달 뒤 1880년 설립된 사진 관련 용품 제조업체 코닥이 파산 신청을 했다. 코닥의 직원 수는 한때 14만5,300명에 달했다.
제임스 와트가 만든 증기기관이 사람을 공격하자 사람은 기계를 때려 부수며 저항했다. 그때도 달걀로 바위 치기였고 지금은 더욱 무모한 시도일 뿐이다.
갈 길은 기계와의 공생이다. 공생 방법이 문제일 뿐이다. '제2의 기계시대'라는 책에서 저자는 역소득세를 제안했다. 정부가 면세점 이상의 소득자에게 세금을 물리는 것과 반대로 면세점 이하의 소득자에게 일정률의 현금을 지급해 전체 사회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는 방법이다. 노동개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 문제인 기계와의 공생 방법에 대해서도 지금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한기석 논설위원 hank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