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철강·석유화학 등 그간 제조 한국, 고부가가치 성장의 주축을 이뤄왔던 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과 대규모 인력감원의 어두운 소식들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경제와 산업의 총체적 난국이다. 부실기업과 경쟁력을 잃은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동안 발생하게 될 대량실업은 다시 한 번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와 같은 사회불안과 위기감을 몰고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산업구조 조정과 함께 실직자들에 대한 특별 생활안정 대책과 새로운 일자리로의 재취업을 위한 직업훈련 프로그램 등이 동시에 마련돼야 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경제주체인 노사정이 마주 앉아 위기극복을 위한 사회적 대화와 대처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러나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 대화 당사자들 간의 갈등과 반목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후 새로운 돌파구가 잘 보이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사회적 대화의 당사자들이 왜 대화와 타협을 해야 하는지, 그런 과정에서 각 당사자가 지켜야 할 협상의 기본원칙들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협상의 기본은 주고받는 것이다. 국제통상학의 비교우위론처럼 서로에게 유익한 것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조건과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 협상이다. 주지해야 할 것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최선의 방법은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혜택을 주는 것이라는 게 협상론의 제1원칙이다. 아울러 적일수록 더 가까이 둬야 더 많은 정보를 얻고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부속 조언도 있다. 한걸음에 상극에서 상생으로 가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므로 일단 시작하고 점진적으로 접근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관계의 복원을 위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상대방의 근본적 니즈(요구)에 대한 파악으로부터 출발해 차근차근 나아갈 수 있는 중간단계를 많이 설정할 필요가 있음도 중요한 착안 사항이다. 자선사업가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가를 알아야 그것을 역이용해 협상을 내게 유리하게 끌고 올 수 있는 전략의 수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이나 원리들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될 경우 두 상대방은 상호협상을 하는 상황이 아니라 각자 다른 제 3자를 의식한 기만이나 쇼를 하고 있는지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
어렵게 성사된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 당사자들 간의 비난과 불신으로 파열되면서 교착상태에 놓여 있다. 이제 여기에서 어디로 갈 것인가. 갈등의 내용이나 형식 양 측면 모두에서 전환의 돌파구를 찾는 것이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관계가 복잡하게 꼬이고 갈등 해소가 어려워 보일수록 원점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보라는 말이 있다. 꼬인 상황에서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수만을 반복하면 상호관계는 더 이상 회복이 어려운 지경에 봉착하기 쉽기 때문이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갈등이 해소되기 어려울 때 -즉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대안의 방법은 해법 대신 개혁하고자 하는 사회적 문제 그 자체로부터 재출발하는 것이다. 보통 아무리 관점과 입장이 달라도 사회적 문제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해서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오래된 것일수록 개혁하기 힘들다. 기존 질서에 내재돼 있는 그러한 이해상관의 뿌리를 흔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혁은 사회적 대화와 소통, 그리고 상충하는 이해의 조정이라는 과정을 인내를 가지고 지속 추진해야 이룰 수 있다. 쉽게 빠르게 강압적으로 하면 일단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겠지만 그 효과가 지속 가능하지 못할 것이다.
개혁은 기존의 비효율적 합리성을 새로운 효율적 합리성으로 바꿔줘야 하며 거기에는 등가교환의 원칙과 기득권이라는 무거운 관성의 힘이 작용하게 된다. 협상의 당사자 간에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을 것인지 다시 원점에서 재고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산업구조 조정기 절체절명의 사회적 문제인 일자리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파트너들의 대승적 결단과 국가 경제의 미래를 위한 현명한 협력 방안들이 조속히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