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에 자리한 오규환(56·사진) 대한변리사회 회장 집무실에는 ‘식민잔재 특혜제도, 자동자격 폐지하라’고 적힌 현수막이 놓여 있다. 변호사에게 변리사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하는 ‘자동자격 제도’에 대한 변리사들의 불만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장면이다. 취임 한 달을 맞은 오 회장은 지난 3일 “(오늘) 아침에도 변리사법 시행령 개정안 문제 대응을 논의하기 위해 상임이사회를 열었다”며 “역대 회장 중 누구보다 급하게 임기 초반을 보내는 것 같다”며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을 맞았다.
자동자격 논란의 연장선인 변리사법 시행령 개정안은 변호사가 변리사 업무를 하기 위해 받아야 하는 수습 교육의 주체·시간·면제 범위 등을 규정한 법령. 지난해 국회가 변호사들이 변리사 업무를 맡으려면 실무 교육을 먼저 받도록 변리사법을 개정한 데 이은 후속 입법이다. 자동자격 제도를 그대로 두는 대신 변리사 실무 교육을 받게 한 일종의 타협안이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불필요한 교육을 강요받는다’며 시행령에 반대했고, 변리사들도 ‘부실한 실무 연수만으로 변리사 업무를 허용한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지난달 30일 오 회장을 포함한 변리사 700여명이 대전 특허청을 찾아가 “시행령 입법예고를 철폐하라”는 집회를 연 것도 이 때문이다.
오 회장은 “실무 교육을 하자는 게 아니라 면제해주자는 시행령”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변호사가 5주가량의 교육만 받으면 변리사가 받고 있는 1년의 실무 수습을 다 마친 걸로 인정해준다”며 “수습 실무 면제 조항을 남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변호사들이 변리사 연수를 받도록 법을 개정한 취지는 변호사가 전문성을 더 갖추게 하자는 것인데 시행령은 오히려 수습 교육을 약화해 모법의 취지에 반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개정안의 모순도 지적했다. 오 회장은 “변리사는 특허침해 소송을 대리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특허침해 소송을 대리한 경험이 있다고 해서 변리사 실무 연수를 면제해주는 것은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개정안에는 변호사가 산업 재산권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나 단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면 변리사 사무소 실습을 면제해주도록 했는데 이는 로펌에서 특허침해 소송을 대리한 경험이 있으면 교육을 안 받아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는 이유에서다.
오 회장은 자동자격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을 내비쳤다. “미대를 다니다 로스쿨에서 형법을 파고들어 시험을 통과한 변호사도 변리사 자격을 주는 것”이라며 “게다가 이들이 학교에서 몇몇 과목을 들었다고 실무 교육도 일부 면제해주는데 이렇게 해서 변리사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1,000명 가운데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 회장은 또 변리사법 시행령을 그대로 입법하면 국내에 출원하는 특허 자체가 부실해 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좋은 특허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는데 좋은 발명과 좋은 특허 명세서”라며 “대단한 발명이라도 명세서가 부실하면 권리 범위가 형편없이 나와 특허권자가 권리행사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변리사 역할이 특허를 출원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침해를 막아 권리를 지켜주는 데까지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오 회장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기업 간 국제 특허 분쟁에서도 변리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화웨이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 소송은 ‘삼성과 다툴 정도의 기술 기업’이라는 브랜드 가치 향상을 노린 것”이라며 “앞으로 중국 후발 주자가 국내 선두 기업을 대상으로 제기하는 특허 소송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세계 각지에서 특허분쟁이 벌어지면 국내 전문가들이 후방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기술 분석을 통해 특허 침해가 성립하는지 판단해주는 것은 결국 변리사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김흥록·박우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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