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롯데가 소유주(오너) 리스크에 기업공개(IPO) 일정을 늦추고 공모 희망가도 12% 낮춰 공모액도 5조원 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기업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IPO가 불투명한 최대주주 가족들의 행태에 발목이 잡힌 셈이다.
호텔롯데는 7일 금융당국에 면세점 입점 로비 관련 검찰 수사 내용을 담은 증권신고서를 정정 제출했다. 이에 따라 증권신고서의 효력 발생일이 3주 정도 뒤로 밀리면서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비롯해 모든 IPO 관련 일정이 전면 연기됐다. 앞서 검찰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롯데면세점 입점을 위해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게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신 이사장의 자택과 호텔롯데 면세사업부 등을 압수 수색했다. 검찰 수사의 칼끝이 신 이사장을 직접 겨누고 있는 셈이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서울 잠실 롯데면세점 재승인 여부도 불투명해지자 호텔롯데의 공모주 청약 흥행에 ‘올인’한 롯데그룹 내부에도 냉기가 감도는 분위기다.
호텔롯데는 당초 지난 6일에 시작하기로 했다가 취소된 해외 딜 로드쇼(주식 등 자금조달을 위한 설명회)를 이달 27일부터 10일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이어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한 수요예측은 다음달 6~7일 실시하며 최종 공모가를 확정한 뒤 같은 달 12~13일에 공모주 청약 절차를 진행한다. 모든 절차가 원래 계획보다 20일가량 뒤로 미뤄진 셈이다. 이달 29일 예정이었던 상장일도 7월21일로 변경했다.
공모가 범위는 기존 9만7,000~12만원에서 8만5,000~11만원으로 12% 정도 낮췄다. 이에 따라 호텔롯데의 공모액도 4조677억원~5조2,64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원래는 4조6,419억~5조7,426억원을 모집할 계획이었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기관투자가들을 만나면서 기존 공모가 범위가 다소 높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낮추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신고서는 IPO 등을 통해 새로 자금을 공모할 때 금융당국에 제출하는 서류로 자금 모집 규모와 활용 방안, 투자 위험 등의 세부 내용을 담고 있다. 만일 투자자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이 증권신고서에 추가되거나 바뀌면 효력 발생일이 뒤로 늦춰져 전체 IPO 일정도 변경된다. 호텔롯데는 1월28일 한국거래소의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해 6개월 안에(7월28일) 상장을 마쳐야 한다. 만일 7월28일까지 상장을 하지 못할 경우 IPO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한다.
앞으로 검찰 수사 결과 신 이사장 등에 대한 로비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잠실 롯데면세점 재승인 심사에도 불똥이 튀어 호텔롯데의 기업가치 산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호텔롯데의 공모주 청약 흥행 전략은 난관에 부딪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핵심 계열사인 호텔롯데의 상장으로 일본 계열사의 보유 지분율을 낮춰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을 마무리 짓고 ‘국적 논란’을 해소해야 하는 갈 길 바쁜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원치 않는 시나리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