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ICT를 입은 한방 의료기기



전 세계적으로 인구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가정에서 손쉽게 건강을 진단하고 질병을 예방·관리할 수 있는 가정용 의료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전통 한방의학에 관심이 많은 우리나라의 경우 한의학에 기반한 지능형 의료기기의 수요가 늘고 있는 추세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이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한의학과 로봇기술 등을 접목한 ICT 융합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의료시장의 패러다임이 치료에서 예방·관리로 진화하고 있다. 이에 편승해 서양의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전통의학과 보완·대체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한방 의료기기 시장의 확대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반연구부 김재욱 박사 연구팀이 첨단 정보통신기술(ICT)과의 융합연구를 통해 한의학 기반 측정·자극 시스템의 원천기술 개발에 나서면서 그 성과에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 박사팀은 이를 통해 대규모 데이터베이스(DB) 구축과 데이터 분석기술을 적용, 개인 맞춤형 진단·치료기기 등 융복합 의료기기를 개발한다는 목표다.

김 박사는 포스텍과 스웨덴 샬머스 공과대학, 그리고 예테보리 대학에서 각각 물리학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카이스트에서 나노물리학 이론을 연구하다가 지난 2009년 한의학연구원에 합류했다.

김 박사는 “저희 부서는 물리학, 로봇, 기계, 전기전자, 생명공학, 의용공학, 통계학 등 공학 전공자들이 많다”면서 “이들과 한의학 전공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 한의학과 과학기술을 접목한 객관적이고 표준화된 진단기기의 개발에 힘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한의학과 로봇공학의 조우
현재 연구팀은 맥진기와 설진기, 통합 체질 건강 진단 자극 시스템, 사상체질 진단 툴, 안면진단기, 음성 및 피부진단기 등의 개발과 지속적인 성능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이중 맥진기는 연구팀의 로봇공학자들이 핵심 기술을 개발, 한의학과 로봇공학 기술의 집약체로 꼽힌다.

실제로 그동안 맥진은 고도의 한의학적 지식과 숙련이 필요하고, 감각에 의존해 진단하기 때문에 경험의 공유와 전달이 쉽지 않았다. 김 박사팀이 개발 중인 맥진기의 경우 한의사들이 진맥할 때 보통 세 손가락으로 촌(寸), 관(關), 척(尺) 등 세 자리를 진맥하는 것에 착안해 가압 센서가 맥을 짚는다.

특히 한의사가 진맥하는 손의 느낌을 재현한 다채널 센서를 활용, 환자 맥파의 압력과 주파수, 폭과 깊이 등을 정밀 측정해 사람 수준의 정확도로 몸 상태를 진단한다.

연구팀이 주력하는 또 다른 분야는 ‘맥진 가압 트레이닝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인조 피부와 인조 팔, 데이터 수집 하드웨어, 분석용 컴퓨터 등으로 구성된다. 이를 활용하면 유명 맥진 전문가들이 맥진 부위에 가하는 힘의 추이 등을 사전 입력시켜 놓고, 수련자들이 제대로 맥진을 하고 있는지 여부를 비교·분석할 수 있다.

침 놓은 로봇을 만들고 싶어 한의학연에 들어왔다는 김영민 선임연구원은 카이스트 인간친화 복지로봇시스템 연구센터에서 5년간 근무한 로봇공학자다. 그는 연구팀 내에서 맥 분석 시스템 개발과 관련한 지능로봇 기술 기반 및 능동형 맥 측정기술 개발 연구과제를 책임지고 있다. 이 연구의 핵심은 손가락을 이용하는 한의사의 진맥을 기기로 얼마나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지에 달려 있다.


김 선임연구원은 “사람의 손가락 움직임을 모사해 가압하는 매니퓰레이션과 유체의 흐름을 느끼는 센싱 기술 등 다양한 하이테크 기술이 맥을 짚는 로봇의 손가락 부분에 집중돼 있다”며 “로봇 센서가 손목의 요골 동맥을 정확하게 수직으로 누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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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김 선임연구원은 피부 밀착형 고분해능 맥 센서, 정밀 혈관 가압용 제어기술, 3부위 가압 동기화 제어 시스템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향후 개발될 고도화된 맥진기가 모바일과 U-헬스케어 환경에 적합한 가정용 기기의 개발로 이어질 것이라 전망한다.






한의학의 과학화·표준화
맥진기와 더불어 로봇의 인지기능도 한방기기에 활용된다. 한의학 진단에는 외형의 정확한 진단이 필수적인데, 사람의 정보를 인식하는 인지기능을 로봇이 대신할 경우 한층 객관적이고 정확하며 빠른 진단이 가능해진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고도화된 빅데이터도 수집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카이스트에서 로봇인지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카네기멜론대학 로봇연구소에서 로봇 시각 인지를 연구한 장준수 선임연구원을 주축으로 ‘깊이 카메라를 이용한 안면의 체형과 3차원 측정 및 균형 분석 자동화 기술 개발’ 과제가 추진 중이다.

그 일환으로 현재 사람의 얼굴, 표정, 동작과 같은 시각인지 정보 측정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3차원 안면과 체형의 특징, 자세 추정, 균형, 외곽선 정보 등을 자동으로 추출하고 분석하는 알고리즘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장 선임연구원은 “연구 결과들이 시스템에 적용되면 안면진단기, 설진기 등 기존 진단기기의 정확도 향상을 꾀할 수 있다”며 “연구가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향후 동영상 기반으로 안면, 자세, 동작 등을 추가 분석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도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덧붙여 연구팀은 2013년 세계 최초로 통합체질 건강진단·자극시스템을 개발한 바 있다. 이는 얼굴의 형태와 음성, 설문 응답, 체형 측정 등 4가지 진단법을 하나로 통합한 기기다. 그동안 한의사가 촉각, 시각, 청각, 후각, 미각 등 5가지 주관적 감각을 활용해 진단하던 것을 기계적으로 구현한 장치라 할 수 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기기는 안면·음성·피부, 맥 진단, 나이, 체질량 지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체질건강지수를 정확하게 산출해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환자에게 전기적 침과 고주파 자극 등 최적화된 맞춤형 시술이 가능하다. 사상 체질의학의 과학화와 객관화를 통해 정확하고 정량화된 진단기술을 확보한 셈이다.

연구팀은 향후 추가 기술 고도화를 거쳐 실버타운이나 요양병원, 건강검진센터를 중심으로 가정용 개인 건강관리시스템에 최적화된 체질진단기를 상용화할 예정이다.

김 박사는 “ICT 융합연구의 틀 안에서 예방의학과 개인 맞춤의학에 특화된 한의학을 기반으로 각종 원천기술 개발과 한방 의료기기 개발이 성공리에 진행된다면 미래 의료시장에서 막대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이어 “한방 의학이 세계적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만큼 현재 진행 중인 연구들이 향후 5~10년 내 상용화돼 국민들의 건강관리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대덕=구본혁 기자 nbgkoo@sed.co.kr

구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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