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과 채권단이 당초 예정됐던 조건부 자율협약 기간 마감일(4일)을 하루 앞둔 3일까지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한진해운 구조조정은 앞으로 한 달간의 ‘연장전’에 돌입하게 됐다. 만약 다음달 4일까지도 양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한진해운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현대상선과 더불어 국가기간산업인 해운업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한진해운은 사실상 간판을 내리게 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제조업은 법정관리 신청 이후에도 공장을 돌릴 수 있지만 해운업은 당장 선박 억류 및 반환이 시작돼 영업이 불가능한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며 “이 경우 수출은 물론 물류산업 전반에 심대한 타격이 예상되는 만큼 파국을 막을 수 있는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속도 못 내는 선박금융 협상이 최대 난제=현시점에서 최선의 시나리오는 한진해운이 선주사 및 외국계 금융회사들과 벌이고 있는 용선료와 선박금융(배를 사들이기 위해 은행에서 꿔온 돈) 상환유예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한진해운은 용선료 조정 협상을 통해 7,000억원가량의 빚을 깎고 선박금융 상환을 뒤로 미뤄 5,000억원의 부담을 덜어낸 뒤 유상증자를 통해 4,000억원의 현금을 조달하면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 회사를 정상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단 용선료 협상은 상당한 수준의 진척을 보이고 있다. 현재 한진해운은 22개 선주사와 협상을 벌이고 있으며 목표로 한 7,000억원 중 약 4,000억~5,000억원가량에 대해서는 선주사들로부터 긍정적인 입장을 이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캐나다계 선주사인 시스팬 등 일부 강경 선주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갈 경우 더 손해가 크다는 대전제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선박금융 협상이다. 한진해운은 배를 사들이면서 HSH노르드방크·BNP파리바·산업은행 등 국내외 금융회사 30여곳에 약 2조5,000억원의 빚을 졌고 이에 대한 원리금 5,000억원가량을 내년까지 상환해야 한다. 5,000억원의 원리금 부담을 내년 이후로 미루겠다는 게 한진해운의 전략이지만 이 같은 원리금 유예는 해운업계에서 전례가 없어 현재까지 거의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채권단과 금융권의 설명이다.
◇한진해운·채권단 공생하는 대안 찾아야=앞으로 남은 한 달 동안 두 협상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한진해운의 회생 방정식은 더욱 복잡해진다.
채권단은 한진그룹이 최소 7,000억원의 현금을 마련해와야 채무 재조정이 가능하다며 연일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달 20일 상반기 경영설명회에서 “한진해운 회생은 오너의 결심에 따라 빨리 정리될 수 있다”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결단을 촉구했다.
하지만 조 회장이 ‘결단’을 내리더라도 실제 자금지원까지는 절차가 복잡하다는 게 재계 안팎의 지적이다. 무엇보다 배임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한진해운에 실질적으로 실탄을 대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한항공의 경우 투입한 돈을 회수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데다 무리하게 지원에 나섰다가 가뜩이나 부실한 재무구조가 더 악화돼 주주 및 사외이사들의 반대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한국신용평가는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에 대한 독자 지원에 나설 경우 신용등급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지난달 경고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재계와 금융권 안팎에서는 한진해운과 채권단이 공생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위원회 출신의 한 전직 고위관료는 “금융위와 산은은 자칫 차기 정권에서 불거질 수 있는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규자금 지원 불가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며 “현재 금융위에는 산업적 측면에서 책임의식을 갖고 해운업에 접근하는 전문가가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산은이 재무적 구조조정에 함몰되지 말고 산업적 측면에서 일부 신규자금 지원을 약속하는 한편 조 회장이 배임의 부담 없이 자금을 집어넣을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방향으로 새로운 설계도를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