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상황이 가중되면서 사소한 일에도 가슴이 철렁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그동안 자신의 안정을 보장해줬던 믿을 만한 것들이 아침에 눈을 뜨면 신기루로 변해 있는 현실이 불안 심리를 가중시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성실하게 일하던 터전이 어이없이 붕괴되고 좋은 학교 졸업장을 가졌어도 취업은 요원하고 가지고 있던 재산도 언제 반 토막 날지 모르고, 정부의 정책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고 북한 리스크는 점점 커지고…. 조금만 따져봐도 도무지 신뢰할 만한 사람이나 공동체를 만나기가 어려운 세태다.
우리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삶이 팍팍하다는 것은 지수로도 나타난다. 유엔이 내놓은 2016행복보고서는 2016년 우리나라의 행복지수 순위를 세계 58위로 평가했다. 지난해보다 11계단 떨어졌다. ‘N포세대’ ‘헬조선’은 암울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드러낸 표제어다. 그래서 사람들의 속앓이와 눈물은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나라 국민 4명 중 1명은 우울·불안 등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가슴 아픈 통계를 마주한다. 도대체 무엇에 기대 살아야 하고, 또 나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사회 전체적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한마디로 불안사회다.
이렇게 불안이 심화 확산되면서 새롭게 주목하게 되는 경향은 점점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사실 불안한 상황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하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생각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이것은 드러내놓은 심리이기보다는 가라앉아 있는 욕구다. 그런데 자꾸만 세상에서 험악하고 불안한 일을 겪으니까 결국 믿을 것은 ‘나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고 ‘내가 누구인가’를 알고자 하는 자기분석에 집중하는 현상이 심화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잠시라도 손에서 떨어뜨려 놓으면 불안한 상황이 되고 마는 스마트폰에서도 인기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은 단연 자신의 성격이나 심리를 분석하는 앱이다. 대학캠퍼스마다 열려 있는 학교상담센터는 전례 없는 호황이다. 센터를 찾는 학생들의 상담주제도 과거에는 단순한 진로 상담이 주를 이뤘지만 점점 심리적 장애를 호소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한다. 과거에는 고학년 내담자가 많았는데 점차 저학년으로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미래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을 쳐도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 젊은이들이 당면한 엄혹한 현실을 보는 듯해 못내 가슴이 아프다.
도대체 길은 어디에 있나.
1906년 2월4일에 태어나 1945년 4월9일 교수형에 처해지기까지 만 40여년 동안 불꽃 같은 인생을 살았던 독일 목사 한 분이 있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다. 나치가 국가주의의 이념의 광기로 독일을 통치하던 시절, 이에 저항하며 독일고백교회를 이끌었다가 수감생활을 했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사치스러운 감옥에 있으면서 그는 ‘옥중서간’을 쓴다. “나는 종종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묻는다. 나는 지독한 고통과 끔찍한 경험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속으로는 계속 고통스러워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리고 나 자신에게조차) 만족스럽고 명랑하며 편안한 척 함으로써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사람인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시 말미 부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토로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내 안에서 비롯된 이 고독한 질문들이 나를 조롱한다. /오 주님? /제가 누구인지 당신은 알고 계십니다. /저는 당신 것입니다.”
모두 어렵다 하고 우울증이 감기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환경 속에서 잠잠히 점검했을 때 자신 있게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명함 한 장 건네 듯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나의 나된 것을 파악하고 그것을 정돈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의 근원이 어디에서부터 왔는가를 다시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는 깨우침을 새삼 본회퍼 목사의 글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
이상화 드림의교회 담임목사·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