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20일 “정치와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새판짜기’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손학규 전 대표는 2014년 7·30 보궐선거에 낙선한 뒤 전남 강진 백련사 인근의 토담집에서 생활해왔다. 2년 2개월 만의 ‘강진 하산’이다.
전남 강진은 최근까지 넥센히어로즈의 2군(현 화성히어로즈)이 위치했던 곳이기도 하다. 넥센히어로즈는 2군 선수들에게 ‘기회의 땅’인 팀으로 유명하다. 여타 구단과 달리 모기업의 지원 없이 구단을 운영하다 보니 스타 선수를 영입하기보단 신인을 육성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주전 선수의 부상이나 이적으로 빈 자리가 생기면 즉시 2군 선수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덕분에 신재영, 김하성 같은 걸출한 신인들이 배출될 수 있었다.
강진에 머물던 손학규 전 대표가 하산할 수 있었던 것도 현재 대선 레이스의 선수층이 그만큼 얇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벤치에 대기 중인 후보군은 많지만 확실한 주전감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논란이 터졌다.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시절 북한에 의견을 묻고 유엔 인권결의안 채택에 기권했다는 의혹이다. 야권에서 대세를 굳혀가던 문 전 대표에게 악재가 되자 강진의 2군에 머물던 손학규 전 대표가 기회를 잡은 것이다.
넥센의 2군이 ‘강진히어로즈’로 불리던 시절에도 장점은 있었다. 전남 강진이 수도권과 거리가 먼 데다 오락·유흥시설 등이 충분치 않아 2군 선수들이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강진에서 생활하는 선수들에게 ‘1군 콜업’에 대한 강력한 동기가 생겨 기량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손학규 전 대표 역시 강진에 머물며 얻은 것이 많다. 연고가 없는 호남에서 2년 넘게 생활하며 어느 정도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것은 최고의 소득이다. ‘야권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호남은 4·13 총선에서 현재의 3당 구도를 만든 주역이다. 선거 때마다 중요한 표심을 행사하는 호남에서 민심을 얻어 나쁠 것이 없다.
강진에 유배됐던 다산 정악용과의 연관성을 획득한 것도 하나의 소득이 될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은 조선 실학을 집대성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개혁 사상가다. 손학규 전 대표는 지난 20일 정계복귀 기자회견에서 “이 나라는 털끝 하나인들 병들지 않은 게 없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라는 다산의 말을 인용해 개혁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그가 출간한 책의 제목도 ‘강진일기-나의 목민심서’다.
하지만 2013년 ‘강진히어로즈’가 1군 연고지인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화성으로 옮기며 얻은 것은 대체불가능하다. 서울과 가깝다는 것은 1군과의 더 많은 소통을 의미한다. 당시 염경엽 전 넥센히어로즈 감독은 “무엇보다 감독에겐 반가운 일”이라며 “앞으로 2군 선수들이 가까이서 훈련하고 있는 만큼 1군에 빨리 불러올릴 수 있고 코칭스태프들도 더 자주 만나 긴밀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힌 바 있다. 팬들과의 교류가 더욱 용이해진 것은 덤이다.
손학규 전 대표가 강진을 떠나 ‘정치 1번지’ 서울로 거처를 옮긴 것도 마찬가지다. 손 전 대표는 정계복귀 선언 직후 주요 정치 인물들과의 접촉면을 늘려가고 있다. 이미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의 연대설이 흘러나왔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의 만남도 예고됐다. 손학규 전 대표를 향해 지속적인 러브콜을 보낸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손 전 대표와 좋은 환경 속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좋은 미래를 얘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점차 거세지는 ‘제3지대’ 바람의 핵이 떠오르고 있다.
▶‘박효정의 정치야설’은…
야구를 좋아하는 정치부 기자가 ‘정치와 야구’를 엮어 쓰는 칼럼. 칼럼의 밑바탕에는 ‘사람들이 뭘 좋아할지 몰라서 내가 좋아하는 걸 준비했다’는 마음가짐이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