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또다시 일시이동중지(스탠드스틸) 명령을 내렸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H5N6형)가 발생하지 않은 영남 지역을 사수하려는 조치다. 하지만 AI에 따른 가금류 피해가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안이한 초동대응, 그리고 매번 반복되는 농가 등의 방역시설 미비, 방역 인식 약화 등을 둘러싼 비판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날 0시 현재 확진 및 예방 차원에서 도살 처분된 가금류는 887만8,000마리로 집계됐고 앞으로 154만1,000마리가 추가로 도살 처분될 예정이다. 지난 2014년에는 195일 동안 1,396만마리가 살처분됐는데 현재 추세대로라면 올해는 역대 최단 기간 내 최대 피해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농식품부는 이에 따라 전국 가금 관련 시설 및 차량 등에 대해 일제 소독을 한 후 13일 0시부터 15일 0시까지 48시간 동안 전국 가금류 관련 사람·차량·물품 등을 대상으로 스탠드스틸 명령을 발령했다. 일시이동중지 적용 대상은 국가동물방역통합시스템(KAHIS)에 등록된 8만9,000개소다.
김경규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충북 음성·진천, 경기 포천 등에서는 방역대 내 오염지역에서 차량 등을 통한 인근 농장 간 전파가 추정되고 특히 산란계 농장의 알 운반 차량 등은 오염지역 노출 빈도가 높아 향후 다른 지역으로의 수평전파 가능성이 매우 우려되는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AI가 발생할 때마다 여러 대책을 세우고 “청정지대 선포도 머지않았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AI 대응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의 경우 예년에 비해 훨씬 AI의 전파 속도가 빠르고 범위도 넓다.
전문가들은 사태가 이렇게 악화된 이유로 네 가지를 꼽았다.
먼저 H5N6형 고병원성 AI는 감염된 닭과 오리 등이 일시에 폐사하는 등 강한 독성을 보이고 있다. 2014년 유행했던 H5N8형 고병원성 AI가 상당 기간 잠복기를 거친 뒤 임상 증상이 나타났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겨울 철새의 도래에 따라 전국 각지에 동시다발적으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퍼진 점도 원인이다. 김재홍 서울대 수의과대학장은 “올해 고병원성 AI가 빨리 퍼진 것은 철새 감염이 워낙 광범위하게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탄핵정국으로 인해 정부가 신속하게 총력대응에 나서지 못했고 현장의 방역조치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범정부 차원의 AI 대책은 지난달 16일 전남 해남군과 충북 음성군 가금류 농장에서 H5N6형 AI 바이러스가 검출된 지 26일 만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AI 관련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정부 차원의 대책 강화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범정부 차원의 AI 방역대책본부의 확대 개편,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로의 전환 등을 통해 현장 방역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김 학장은 “정부 측 방역 인식이 2010년 이전과 2010년 이후가 많이 다르다”면서 “특히 지자체 방역 부문에서 제대로 돌아가는 곳이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농가와 지자체의 방역 인식 약화도 문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확진 판정을 받은 38개 농가 가운데 28개 농가에서 제대로 방진복을 갖춰 입지 않고 방역에 나섰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김 학장도 “오리·산란계·종계 등 각 협회마다 이해관계가 달라 합심 협력에서 느슨해진 부분이 있는데 이를 총체적으로 다잡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지자체의 현장 방역인력 부족으로 감염이 발생한 지역에 방역관이 한 명도 없거나 태부족인 경우가 많은 점도 보완해야 할 요소로 꼽히고 있다.
/세종=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