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재를 생산하는 국내 중소기업들이 1년에 한 번씩 목 놓아 기다리는 날이 있다. 11월11일 중국 광군제(光棍節)다. ‘1’이 네 번 겹쳐 ‘솔로(光棍)의 날’로 불렸는데 지난 2009년부터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가 이날 온라인몰 대규모 할인행사에 들어가면서 지금은 세계 최대의 쇼핑 이벤트로 발전했다.
두 달 전 광군제는 갖가지 기록을 남겼다. 일단 한국제품은 일본·미국에 이어 매출 3위(총거래액 기준)를 기록했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은 유아용품과 뷰티제품이었다. 특히 마스크팩은 1,000만개 이상 팔리며 화장품계의 반도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였는데 흥미롭게도 판매량 톱3는 AHC·리더스·제이준 등 중소기업 브랜드가 차지했다.
2015년 말 현재 세계 온라인 시장규모는 3,040억달러를 기록했다. 놀라운 점은 아직 시작하는 단계라는 사실이다. 시장조사 기관들은 오는 2020년께 온라인 시장이 1조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글로벌 온라인 구매시장은 황금의 땅이다.
온라인 시장 확대는 국내 중소기업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광군제 때 AHC·리더스·제이준 등의 활약상을 보면 기회라는 점은 분명하다. 광군제나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같은 대형 쇼핑 이벤트가 없었다면 이들이 지금의 외형을 갖추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중소 화장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글로벌 오프라인 마켓에서 소비자들에게 자사 제품을 알리고 판로를 개척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며 “오히려 온라인 마켓에서는 중소기업의 민첩성과 빠른 의사결정 구조가 장점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중소기업들이 황금의 땅 앞에서 구경꾼 신세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마음(상품 제조)은 이만큼 앞서 가 있는데 행동(수출 실행력)이 따라주지 못한 탓이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은 △마케팅 △배송 △애프터서비스(AS) △반품 등을 온라인 판로 개척의 애로사항으로 지적했다. 인력도 부족하고 자금도 뒤처지는 중소기업의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정부가 중소기업들의 가려운 곳을 적극 찾아내 정책지원에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5년 중기청 수출 예산 중 오프라인 수출 부문에는 15개 사업 1,406억원이 배정된 반면 온라인 수출에는 2개 사업 83억원에 그쳤다. 정부는 최근 온·오프라인 수출의 균형성장이 중소기업 퀸텀점프의 핵심 요소라고 오프라인에 버금가는 온라인 수출지원 환경을 구축하는 데 나서고 있다. 여기에는 △온라인 쇼핑몰 구축 △온라인 수출전문기업(GoMD) 발굴 지원 △물류·AS 공동지원 △각종 인증·금융지원 등이 총망라돼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온라인 시장 규모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역직구를 포함한 우리나라 온라인 구매시장 규모는 약 1억달러로 총 수출액의 0.03%에 불과하다. 이 말은 역으로 생각하면 정보기술(IT) 강국인 우리나라 온라인 시장의 성장 여력이 그만큼 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황금의 땅으로 입장하는 문이 이제 막 열리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