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방송된 KBS1 설 특집 ‘어머니의 겨울풍경’에서는 여전히 눈바람 속에 자리한 마을을 지키며 사는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첩첩산중 전북 무주 벌한마을, 긴 골짜기를 따라 들어가다 보면 거칠봉과 사선암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일곱 개의 봉우리에 신선이 거하고, 네 개의 바위에는 바둑을 두며 신선이 노닐던 곳, 그 아래에 사람의 마을이 있다.
바람도 불었다가, 얼음도 얼었다가, 눈도 날렸다가 추위가 깊어진 마을 주변의 모든 것이 겨울이다. 잠시 내린 눈이 금세 또 마을을 덮어버렸다.
‘눈 오면 나는 눈 쓰는 게 일이다’ 권영순(84) 어머니는 익숙한 듯 빗자루로 눈을 쓸어낸다.
연기 나는 굴뚝, 김이 나는 솥뚜껑 위의 양말, 아궁이의 발간 숯. 흘러간 시간이 묻어나는 어머니의 집에는 추운 겨울의 다정한 풍경들이 있다.
권영순 어머니 댁의 방문을 열면, 어머니 대신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는 메주가 있다.
정성을 들인 만큼 잘 뜨고 있는 메주, 혼자 살아도 해마다 메주를 만들고 장을 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자슥들이 커서 전부 분가해 나강게 여기 오는 거보다 집에서 더 먹잖아”
시집와 7남1녀 키우며 한 세월 건너왔건만 지금도 어머니는 자신보다 자식들이 먼저다.
차곡차곡 쟁여놓은 땔감부터 약재, 곡식들. 말려놓은 시래기, 호박, 내년 봄에 심을 옥수수 종자까지
어머니의 집에는 자식들에게 줄 것과 오래된 시간이 차있다.
아흔 살의 김애자(90) 어머니는 72년 전, 열여덟에 권영순 어머니의 6촌 시동생에게 시집왔다.
두 어머니의 서열을 바꿔놓은 영감님은 다 떠나고 두 분만 남았다.
“타고난 운명이라 인연이니까 이렇게 만나서 형님동생하고 살지”
권영순 어머니는 하루 한두 번씩 김애자 어머니 댁을 찾는다. 서로 말벗이 되어 외롭지 않고, 작은 거 하나라도 먼저 챙기게 된다.
볕이 좋은 어느 날, 나란히 사이좋게 산책을 다니는 두 어머니. 시집와 맺은 인연으로 두 어머니는 이 마을에서 함께 여생을 보내고 있다.
[사진=K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