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검이 수사 기간을 고려했을 때 삼성 외 다른 대기업 수사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자 재계는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SK·롯데·포스코·CJ 등 그룹 총수들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인 뇌물죄 등에 관련된 만큼 수사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을 경우 그동안 미뤄왔던 투자나 신사업 구상 등이 본격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드러냈다.
14일 특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현재로서 수사 기간을 고려했을 때 다른 대기업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며 “다른 대기업에 대한 수사가 공식적으로 진행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조사 대상에 오르내리던 그룹은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특검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에 최대한 발언을 자제하는 모습이다.
삼성에 이어 다음 수사 표적으로 지목되던 SK는 “언급할 내용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SK그룹은 지난 2015년 최태원 회장의 특별사면을 대가로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111억원을 출연한 의혹을 받았다.
포스코그룹도 일단은 한숨 돌리게 됐다. 권 회장은 지난해 최순실씨 측근인 차은택씨 측의 광고 계열사 포레카 강탈에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포스코는 권 회장 연임 추천 과정에서 진행된 이사회 차원의 검증으로 법적으로 문제될 만한 사안이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는 입장이지만 여전히 잠재 리스크 요인으로 남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특검 수사 기간이 연장될 경우 또 다시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는 반응도 있다. 특검 수사 기간이 연장되지 않더라도 검찰로 사건이 이관돼 수사가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면세점 신규 특허와 미르재단 등에 대한 출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기존 입장 그대로일 뿐”이라면서도 “아직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긴장을 놓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도 “특검이 연장될 가능성이 많고 연장되지 않더라도 검찰에서 계속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불확실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특검이 삼성 수사에 전력 중이고 삼성 외 대기업에 대한 수사는 진행하지 않았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만큼 당장 다른 대기업 총수에 대한 소환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총수의 활동 제약으로 미뤄온 산적한 경영계획이나 조직개편, 신사업 구상 등 다양한 기업 활동이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SK그룹은 지난해보다 21%가량 늘어난 17조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계획을 세웠는데 SK하이닉스의 청주 낸드플래시 공장 등 국내 시설 투자에만 11조원, 인수합병(M&A) 등 전략투자에 4조9,000억원을 쓰기로 했다. 대부분 사업이 최태원 회장의 결정에 달려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중요한 사업인 만큼 최 회장이 수사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낼 경우 투자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포스코그룹 역시 제철소 고도화 사업과 리튬 등 신소재 개발 등 올해 3조5,000억원의 투자를 진행할 예정으로 특검 수사에 얽히지 않는다면 계획됐던 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재현 회장의 사면을 대가로 자금을 제공하거나 정부 시책에 협조한 것이라는 의심을 받았던 CJ그룹 역시 이번을 계기로 미뤄왔던 임원 인사와 조직개편 등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를 M&A 등 글로벌 시장 공략의 원년으로 삼은 만큼 투병, 정부의 압박, 구속 등으로 생긴 총수의 공백기간을 최소화하고 의사결정 체계를 재건하는 데 온 힘을 쏟을 태세다. CJ그룹 관계자는 “참고인 출석 등 특검 수사를 받은 적이 없어 공식 입장도 없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올해 5조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만큼 수사 대비로 중단됐던 새 경영 시스템 확립 작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호·윤경환기자 jun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