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중심상권인 이른바 ‘명동거리’에서 20여년째 국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상경(54·가명)씨는 요즘 가게 문을 열기 전 신문을 집어들고 정치면을 꼼꼼히 챙겨 읽는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한눈팔 시간이 어디 있느냐며 뉴스에는 좀처럼 신경 쓰지 않던 그였다. 신문이 배달 와도 손님용으로만 가게 한쪽 테이블 위에 휙 던져놓는 정도였다. 그랬던 김씨가 요즘은 기사를 챙겨 읽고 있으니 주방에서 음식 만들다 나온 아내인 정지혜(50·가명)씨가 핀잔 반, 칭찬 반 섞인 투로 기자에게 한 마디 던진다.
“저 양반이 TV에서도 뉴스가 나오면 재미없다고 드라마로 바로 채널을 돌리던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뭔 바람이 불었는지 요즘 신문을 다 보네요. 세상이 뒤숭숭하니 선거로 뭐 좀 바뀌나 하는 거 아니겠어요.”
강원도는 상대적으로 정치 이벤트에 덜 민감한 지역이었다. 도내 유권자 인구가 100만명을 넘은 지 약 20년밖에 안 된다. 유권자 비중이 전국의 약 3%에 불과하다 보니 역대 주요 대선후보들은 선거기간 중 강원도에 보통 한 차례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강원도민들도 대선후보들에 대해 여타 지역보다 무관심하곤 했다. 2000년대 들어 강원도 대선 개표 현황을 보면 기권표가 20~40%에 달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김씨처럼 대선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예전보다 부쩍 높아진 것이다. 대선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4일 강원도의 투표율은 12.36%로 전국 평균인 11.7%를 상회했다. 이 같은 열기는 사전투표 둘째 날인 5일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배경에 대해 원주시 단계동에 거주하는 대학생 이철주(21·가명)씨는 “요즘 대선후보들이 원주를 자주 찾는 것 같아 선거에 관심이 더 가게 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달 8일부터 최근까지 강원도를 세 차례 방문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는 지난달 24일 원주·춘천에서 유세전을 편 데 이어 약 2주 만인 이날 강릉·속초·인제 등을 돌며 유권자들과 만났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도 지난달 26일부터 두 차례 강원도를 찾았으며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도 지난달 하순께 강원도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해 호응을 얻었다.
투표 의지가 높아지면서 강원도의 표심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예측 불가능하게 됐다. 예전 같으면 보수후보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진보후보는 완패했던 곳이 강원도였다.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옛 민주당이 정권교체에 성공했던 15대 대선에서조차 당시 김대중 후보는 강원도에서 23%대의 표를 얻는 데 그쳤고 17대 대선 당시에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18%대의 득표율로 참패를 당했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의 득표율이 62%에 육박했을 정도로 강원의 표심은 보수 쏠림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번 19대 대선에서는 표심이 주요 후보별로 균등 분산돼 있다고 현지 언론인이나 시민들은 입을 모은다. 보수후보가 난립해 있는데다 보수정권을 몰아줬지만 강원도가 별로 득 본 게 없었다는 홀대론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평창에서 배추농사를 지어온 박용현(42·가명)씨는 “강원 지역에서는 노무현 정부 때 실력자였던 이광재 전 도지사에 대한 향수가 있다”며 “보수정당만 찍었던 어르신들도 ‘광재만 한 인물이 강원도에서 있었나’라고 아직도 칭찬할 정도여서 요즘 민주당이 대세라고 하니 문 후보로 마음을 돌리는 분들이 꽤 된다”고 전했다. 반면 강릉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상민(72)씨는 “북한의 김정은이 저리 난리를 치는데 이럴 때일수록 보수후보를 찍어야 한다”며 홍 후보나 안 후보 중에서 될 사람을 찍겠다고 말했다.
정치적 홀대 의식에서 강원도 못지않은 제주도 역시 민심 기류는 복잡하다. 유권자 수가 52만명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고 개발에서 소외돼왔다는 피해의식이 큰 지역이다. 더구나 지난 10여년간 몰려오던 중국계 관광객과 부동산 투자자금이 최근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지역경제를 살릴 인물을 뽑자’는 전략적 표심 성향이 과거보다 높아지고 있다는 게 현지 시민들의 반응을 종합 분석해본 결과다.
다만 투표 열기는 다소 미묘하다. 귀향해 애월읍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이영숙(38)씨는 “우리처럼 외지에서 이사 온 정착민들끼리 이야기해보면 서로 깨끗하고 개혁성향의 후보를 뽑자는 쪽으로 말이 통하는데 이곳에서 오래 사신 토착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보수성향이 짙은 것 같다”며 이주민과 토착민 간 표심 양극화 기류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