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을 추진 중인 강남 주요 단지들의 자세가 달라지고 있다. 올 초까지만 해도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서울시 기준에 반하는 계획안을 수립, 시와 각을 세우던 곳이 적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서울시 요구를 수용하겠다”며 백기를 드는 모습이다. 이유는 내년 부활하는 재건축초과익이익환수제다. 재건축조합은 사업계획 확정 후 관할 구청의 사업시행 인가, 관리처분계획 수립 및 인가 신청 등의 절차를 거치게 되는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려면 올해 말까지 관할 구청에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해야 한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일부를 제외하고 다수의 강남 재건축 단지가 가장 기본이 되는 층수는 물론 건물 배치와 경관 등 도시계획위원회의 세부적인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모습이 보인다”고 전했다.
서울시가 재건축 단지에 요구하는 조건들은 까다롭다. 공동주택은 공공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서울시의 원칙 때문에 주민들이 쉽게 수용하기 힘든 요구도 적지 않다. 재건축 최고층수 35층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기준이고 이 밖에 공공시설·교통대책·경관 등도 심의 대상이다.
신반포3차·경남재건축조합은 한강변에 공공이 활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시설을 추가하라는 서울시의 요구를 결국 받아들였다. 미성·크로바와 진주 역시 주변에 있는 어린이공원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라는 주문을 계획안에 반영했다.
최고층수를 당초 계획보다 낮은 35층에 맞추는 것은 거의 기본이 됐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조합은 그동안 여러 차례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심의가 보류되자 건물 최고층수를 45층에서 35층으로 낮췄고 지난 2월 도시계획위원회 심의가 완료됐다.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조합도 2월 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에서 보류 판정을 받고 전체 정비구역 중 일반주거지역의 건물 최고층수를 모두 35층 이하로 낮췄다.
건물 층수를 다양화하라는 요구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친 한 강남 아파트 재건축조합장은 “도심 경관을 위해 정비구역을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해 10층, 20층, 30층식으로 최고층수를 다양하게 하라는 요구도 있었다”며 “지나가는 사람은 보기 좋을 수 있겠지만 주민들의 일조권은 침해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도심 경관을 명분 삼아 심의에서 지나치게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도심 주요 지역에 위치한 강남 재건축 단지들의 특성상 교통대책도 주요 심의 대상으로 꼽힌다. 재건축 이후 가구 수가 늘어나면서 단지를 중심으로 교통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그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재건축조합들은 단지에서 주변 주간선도로에 곧바로 차량이 진입하지 않도록 보조간선도로로 차량 흐름을 유도하는 식의 대책을 마련하게 된다. 최근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잠실주공5단지 조합에 단지 내 준주거지역과 3종 일반주거지역 경계에 2차선 도시계획도로를 신설하는 방안을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합이 50층 주상복합 2개 동 추가라는 인센티브를 서울시에 요구하기는 했지만 도로 신설까지 수용했다. 단지가 둘로 쪼개지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까지 수용한 셈이다.
일부 단지의 경우는 역사적 보존가치도 심의 대상이 됐다.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조합은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위원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전체 66개 동 중 1개 동의 원형을 보존해 주거역사박물관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잠실주공5단지도 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단지 내 타워형 주동·굴뚝 보존 방안을 마련하라는 권고를 받고 고민에 빠진 상황이다.